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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음과 양이 바뀌는 동지처럼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오늘은 동지(冬至)다. 동지는 해 그림자가 가장 길어지는 날,음(陰)이 극에 달한 오늘부터는 양(陽)이 싹튼다. 음과 양이 교체하는 날이란 뜻이다. 제발 한국 과학이 그늘(陰)을 씻어내고 볕(陽)이 들기 시작하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한 사람의 과학자를 불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세계 최고라며 떠받들고 치켜세웠으니,동티가 날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앞으로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에 국제 학계가 눈을 부릅뜨고 경계하겠지만,곧 잊혀지길 바랄 수밖에.우리 모두 마음이 상했고,특히 희귀ㆍ난치병 환자나 그 가족들의 실망이 안쓰럽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추락하는 이공계에 희망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했던 과학 영웅의 신화가 사라지면서,그 부작용으로 이공계가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질까 하는 걱정이다. 우리 청소년들의 황당함을 누가 어떻게 치유해줄 수 있을까? 돌이켜 보자면 과학사에 이런 사건은 아주 많다. 자위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높다고 여겨지는 조건에서는 '과학 사기사건'은 더욱 강하게 활용되기도 했다. 나치독일의 '독일과학', 스탈린 소련의 '뤼셍코 유전이론',북한의 '김봉한 경락론',그리고 이번 한국의 '황우석 줄기세포' 등을 꼽을 수 있다. 모두가 정치적 기대 효과 때문에,과학 이론이 과장되고 절대화돼 그 피해를 극대화한 경우에 속한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사소한(?) 정도의 사기 논문 사건이 있었을 뿐,대형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 대국적으로 보자면 이런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던 것도 우리 과학이 제법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면서 벌어진 것이라 자위하고 싶다. 한국도 이로써 '과학열강'의 반열에 들어갔다고나 할까? 또 한 가지 우리 사회의 무지를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다. 일반 국민들이야 그렇다 치고라도,언론의 잘못으로 사태가 악화돼 온 것이 안타깝다. 미국의 사이언스와 영국의 네이처는 대표적인 국제 과학잡지지만,다른 학술지나 마찬가지로 얼마든지 잘못할 수도 있다. 논문이 제출되면 몇 달 정도 전문학자의 검토를 거치지만 내용을 다시 실험하고 검증해 보는 것은 아니다. 그 흐름이 논리적이고,새로운 것인가를 검토할 뿐이다. 검토를 거쳐 게재된 논문도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발견까지 섞여 있다. 그런 것을 한국의 언론은 이런 잡지에 게재된 논문은 대단한 발견이고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고 소개한다. 게다가 데이터를 날조해 게재된 논문도 수두룩한 것이 현실이다. 날조된 자료를 찾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논문의 자료는 정직한 것을 전제로 하고,당연히 조작한 논문임이 드러나면 저자는 학계에서 쫓겨난다. 내가 여기까지 글을 쓴 시각에 미국의 뉴욕타임스(20일자)는 '과학 발달과 함께 조작이 많아지는 것은 세계적 추세(Global Trend ; More Science, More Fraud)'라고 보도하고 있다. 당연하다. 동지에 생각나는 과학 실험기구로 세종 때의 동표(銅表)가 있다. 거의 6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동짓날 정오에 경복궁 경회루 연못 북쪽에서 태양의 고도를 관측했다. 높이 10m나 되는 이 동표는 태양고도를 정확히 관측하려는 당대 과학실험의 최고 상징이었다. 한국과학이 동지를 맞아 새롭게 일어나기 위해선 우리 나름의 전통을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종대의 동표를 새로 세우고,'세종과학박물관' '한국과학사연구소'도 만들어,우리도 과학의 역사적 맥락에 눈을 크게 떠야하지 않겠는가? 과학 선진국은 대형 과학사기 사건만으로 도달하는 게 아니다. 과학사 연구기관도 하나쯤 있어야 할 터이다. 과학사 연구가 미미하다 보니,이번 스캔들을 보도하는 한국의 매스컴이 이 사건의 세계사적 의미에 함구하게 됐고,국민들은 애국심만으로 과학을 보고 흥분했었다. 2005년의 동지가 한국과학의 장래를 걱정하는 새 출발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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