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식 < 논설위원 > 우리 기업이 외국 연구소에 연구개발(R&D)을 아웃소싱(Outsourcing)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기업의 핵심 역량인 R&D까지도 남에게 맡겨서야 되겠느냐며 의아스럽게 생각하기 십상이다. 아웃소싱이라 하면 으레 부가가치가 낮은 주변 사업을 외부에 맡기는 것으로 인식돼 왔으며,국가와 기업의 명운이 걸린 R&D 만큼은 우리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 정서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R&D 분야에도 아웃소싱의 파도가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세계적 응용기술연구소인 프라운호퍼가 세운 한독기술협력센터는 국내 회사로부터 의뢰받은 차세대 자동차 엔진개발에 나서고 있다.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분소인 한국파스퇴르연구소도 최근 국내 회사로부터 바이오 관련 프로젝트를 의뢰받았다. 세계적 R&D 아웃소싱 업체인 미국 바텔연구소는 부사장을 포함한 시장 조사단을 최근 한국에 파견,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외국 연구소와 기업뿐만이 아니다. 국내 연구중심대학들이 산학협력단을 통해 연구시설 및 인력 등을 제공하면서 R&D 아웃소싱 시장에 뛰어드는가 하면,기업부설연구소들도 아웃소싱을 위한 법인 설립에 나서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R&D 아웃소싱 바람은 비단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선진기업들의 경우 지난 1992년 전체 기술개발 건수의 10%에 불과했던 기술 아웃소싱의 비율이 2001년에는 85%로 급증했으며,일본 선진기업들도 같은 기간 중 35%에서 84%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외부에 맡기고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근래 들어선 미국의 시스코사를 비롯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경우 핵심 R&D 분야까지도 집중적으로 아웃소싱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웃소싱 열기가 이처럼 뜨거워지고 있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 자체 개발할 때에 비해 불확실성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 진출에 걸리는 기간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말해 시장에 가면 맛있는 음식들이 많은데 굳이 집에서 밥을 해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다. 세계 최대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가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개발 당시 임상시험의 절반 이상을 다른 연구소에 맡김으로써 신약개발 기간을 종전의 절반 정도로 대폭 단축시킨 것이 바로 그러한 사례다. 이처럼 아웃소싱이 R&D 분야의 전략적 대안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아웃소싱에만 의존해서는 필요한 모든 기술을 제 때에,그것도 입맛에 맞춰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 형편으로는 경영 전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본 기술을 아웃소싱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다. 때문에 아웃소싱에만 의존해서는 기술 자립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업 등은 핵심 분야에 대한 R&D투자 확대를 통해 기술혁신에 힘을 쏟지 않으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체 R&D 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