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 부국장 > '싸우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적대세력과 투쟁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수법을 배우거나 발상법에 물들게 된다는 얘기다. 386세대가 주축을 이룬 현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그들이 그토록 혐오했던 군사정권의 정책들과 흡사해서 놀라게 된다. 정부가 투기억제를 위한 회심의 카드로 들고나온 토지공개념정책이 그렇다. 이 제도는 80년대 말 투기열풍을 잠재우기 위해 당시 노태우정권이 군사작전하듯이 만들어낸 정책이었다. 노정권은 토지공개념과 함께 분당 일산신도시를 비롯한 200만가구 공급계획을 밀어붙여 부동산열풍을 잠재우는 데 일단 성공한다. 하지만 그 부작용으로 건자재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내수를 대느라 수출이 중단되고 인건비가 폭등했다. 훗날 외환위기를 초래하는 경제의 고비용 저효율구조가 이 당시 상당부분 잉태됐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부작용이 심각했었다. 토지공개념법은 독재정권의 유물이며 반시장적이라는 비판 속에 위헌결정 등으로 용도폐기됐다. 이런 제도를 과거 독재정권과 싸운 공로를 인정받아 집권한 참여정부가 들고 나온 것은 아이러니다. 강북재개발까지 공영개발(정부의 일괄수용ㆍ공급방식)로 추진하겠다는 발상도 마찬가지다. 공영개발은 독재 공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에도 지난한 일이었다. 농지를 수용하는 데도 민원이 워낙 엄청났기 때문에 '공영개발은 경찰병력이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데 이제와서 민원과 이권이 난마처럼 얽혀있는 강북에도 적용하겠다는 발상을 하다니 군사정권도 혀를 내두를 일이다. 지역균형발전정책도 60~70년대 박정희정권이 동원했던 정책수단들과 닮았다. 동해안의 작은 어촌 울산 포항을 공업단지로 만든 것이나 구미를 전자공업 메카로,광양을 제2의 포항으로 만든 것은 군사정권의 산물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도시니 혁신도시니 하는 것도 이름만 다를 뿐 정책발상은 흡사하다. 언론정책도 그렇다. 현 정부는 군사정권과 비교하는 것조차 기분나쁘게 생각하겠지만 언론에 대해 밤놔라 대추놔라 하는 속성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물론 독재정권이 추진했던 정책이라고 해서 차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현 정부 정책들은 60~80년대엔 통했지만 이젠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수요억제중심의 부동산정책부터 그렇다. 보유세 중과 등을 견디지 못한 중산층의 부동산만 쏟아지고 이런 물건은 진짜부자들에게 돌아갈 것이 뻔하다. 강남 재산세 중과도 장기적으론 부자들이 이웃하기 꺼려온 서민층은 물론 중산층까지 퇴출시키고 강남은 세금융단폭격에도 끄떡없을 '재력가들의 철옹성'이 될 공산이 크다. 기업도시 건설 등도 난센스다. 성장률이 3%대에서 맴돌고 기업의 투자전망이 깜깜한데 도시계획선만 잔뜩 그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결국 수도권 등지의 기존공장들을 보조금을 줘가면서 옮겨가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책은 과거 영국등이 복지국가구현을 내걸고 '올인'을 해봤지만 실패로 끝난 구닥다리다. 이 보다는 광양 창원 같은 기존 공업도시에 교육 문화시설 등을 확충해서 수준높은 거점도시로 만드는게 훨씬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기업도시건설이라는 '신기루'에 비해 선거 때 지방표를 모으는데 효력이 덜하다고 보기 때문에 채택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