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14일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노동계의 손을 들어주자 정부와 재계는 물론 대다수 열린우리당 의원들과 노동경제학자들은 "황당하다""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노동계와 경영계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마련된 이번 법안중 비정규직근로자에 대한 인권 차원에서만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말도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더구나 4월 국회 처리를 앞두고 환경노동위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시점에서 갑작스럽게 불거져 나온 이번 인권위의 의견 표명을 놓고 결과적으로 비정규직법안의 국회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상윤 연세대 교수는 "여러가지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만든 법안에 대해 오로지 인권적 측면만 강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인권위도 국민경제 전체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도 "법적 보호 강화만이 능사가 아니다. 과도한 보호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비록 인권위 의견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경제적 여파가 큰 점을 감안해 인권위는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도 인권위 태도에 황당해하긴 마찬가지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제5정조위원장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노사정간 합의 가능성이 무르익는 시점에 인권위가 의견을 표명한 것은 황당무계한 일"이라며 "인권위가 비정규직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노동부와 재계 역시 인권위 권고에 대해 노동시장을 무시한 빗나간 의견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경총은 "비정규직 법안은 노동시장,국가경쟁력,일자리 창출 등 복합적 측면에서 근본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문제"라며 "인권위가 노동시장의 문제를 인권,정치적 문제로 다루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동부도 "비정규직 문제는 인권 차원이 아니라 노동시장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노사정이 대화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런 의견을 낸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결과를 낳아 혼선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 권고내용은 프랑스 등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만 채택하고 있고 일본이나 미국 등에서는 시장원리에 따라 탄력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경우 프랑스만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있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동등 처우,차별 금지 등을 명시해 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을 해소시켜나가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 제한도 프랑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만 명시하고 있고 일본은 아예 사용 제한이 없다. 이번 인권위 권고는 정부와 사용자에는 부담으로,노동계에는 유리하게 작용해 정부와 국회의 4월 처리 방침도 불투명하게 됐다. 정부안에 대해 노사정이 팽팽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권위의 권고는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와 노사정은 지난 6일 대표자급 간담회, 8일 첫 실무회의를 연 데 이어 13일 2차 실무의회와 16일 3차 실무회의를 거쳐 오는 20~21일 비정규직법안의 처리 방향에 대한 결론을 낼 예정이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