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의 광고대행사인 RSCG월드와이드는 올해의 특징적인 경향의 하나로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산업을 들었다. 메트로섹슈얼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여성성 화장과 패션에 민감한 '여성스러운'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로, 한 마디로 멋부리기를 좋아하는 남자다. 남자는 강인한 인상에 근육질이어야 하고 여자는 섬세하면서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분법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금남 금녀'의 성역은 외모에서부터 무너지면서 중성화되고 있다. 여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던 목걸이 귀고리 등을 찬다든지 머리를 길러 물을 들이는 것은 신세대 남성뿐만이 아니다. 일반 남성들 사이에서도 이미 일반화된 추세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아름다움'을 거부하면서 아예 성적인 구분을 없앤 젠더리스 룩(genderless look)이 어필하고 있다. 유니섹스 스타일의 패션은 70년대 여권신장운동과 맞물려 유행되기 시작했지만 청바지가 그 출발이 아닌가 싶다. 1백50년 전 서부개척시대에 질긴 천막천으로 만든 청바지는 제임스 딘이 입으면서 청춘의 상징옷이 됐다. 그런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노동자들과의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청바지를 입으면서 남녀 구분을 없앴다. 성(性)에 관한 관념은 법적으로도 깨졌다. 연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성 커플에 대한 결혼증명서를 발급한 것이 단적인 예인데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라는 사고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녀의 성에 대한 관념은 최근 제일기획이 내놓은 '2004 우리시대 남녀의 조용한 혁명'이라는 보고서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남성은 자신의 외모를 갖추는 등 패션에 관심이 많아졌고,여성은 리더십을 갖추고 자의식이 강해졌다. 취미 결혼 가정생활에 대한 태도에서도 고정관념은 파괴되고 있다. 이 같은 유니섹스화는 자기 내부에 잠재된 이성(異性)을 되살리려는 욕구에서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비단 외모만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에서도 성의 구분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마케팅에 승부를 거는 기업들의 발걸음이 바빠질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