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돌아가는 청홍백색의 사인보드,철사줄이나 빨랫대에 걸린 빨간 체크무늬 수건,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액자,이발사 면허증과 태극기,크고 작은 가위와 면도기가 꽂힌 헝겊주머니,포마드크림 등 각종 머릿기름.'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나오는 낡았지만 정겨운 옛이발소 풍경이다. 그래도 이발소(이용원)의 대명사는 바리캉이다. 바리캉은 다름 아닌 이발기(hair clipper).바리캉이라는 명칭은 프랑스의 바리캉&마르(Bariquand et Marre)사 제품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면서 그대로 쓰인 데서 유래됐다. 호치키스 롤러브레이드 바바리 제록스 포클레인처럼 회사 이름이 상품명화한 예인 셈. 유럽에선 18세기까지 의사가 이용사를 겸하던중 1804년 장 바버가 처음 병원과 독립된 이발소를 차렸는데 이후 바리캉&마르사에서 이발기를 만들면서 남성들의 헤어스타일이 오늘날처럼 단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양날이 움직이는 이 기계는 미국의 사이러스 매코믹이 곡물수확기를 발명하는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한다. 바리캉의 위력은 놀랍다. '이발사 박봉구'라는 연극에서 박봉구는 "내 길을 막으면 가새로 싹둑 잘라버리고,내 길을 방해하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려"라고 외치거니와 실제 바리캉만 몇 번 왔다갔다 하면 무성했던 머리카락은 간 데 없고 훤한 얼굴만 남는다. 그러다보니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겐 바리캉에 얽힌 추억이 많다.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어머니가 집에서 보자기를 둘러주고 바리캉으로 깎다 머리가 온통 울퉁불퉁해져 결국 빡빡 밀어야 했던 일,날이 무뎌져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통에 도망다닌 기억,졸업식 며칠 남기고 애써 기른 머리에 바리캉을 대 고속도로를 내놓던 학생주임선생님의 폭거 등. 이용사회와 미용사회가 바리캉 사용 문제로 다툰다고 한다. 이용사측은 미장원에서 바리캉을 사용해 이발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주장이고 미용사들은 머리를 깎기 위해 뭐든 쓸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일단 미용실의 바리캉 사용을 불법이라고 판정했다니 두고 볼 일이지만 사안 자체가 이발소의 생존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다 싶어 씁쓸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