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국가들중 한국 소비자들이 향후 경기 전망에 대해 가장 비관적이라는 AC닐슨의 조사결과는 참으로 우울한 소식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내수불황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내년 성장률이 3%대까지 추락할 것이란 이야기마저 나오는 상황이고 보면 결코 놀라운 일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이번 조사결과를 찬찬히 뜯어보면 우리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선명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경기낙관도는 22%에 그쳐 80% 안팎을 기록한 중국(75%)이나 인도(85%)는 물론 아시아 평균치(53%)의 절반에도 훨씬 미달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불과 6개월만에 경기 낙관도가 19%포인트나 급락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물론 이같은 조사결과가 우리 국민들이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유례없는 내수 불황,실업 악화,원자재 가격 앙등,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그리고 근래들어 갈수록 뚜렷해 지는 수출 둔화 등을 감안해 본다면 결코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낙관적이기까지 한 향후 전망을 왜 유독 한국만 스스로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가. 경제외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탓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큰 것 같다"는 AC닐슨 관계자의 지적처럼 민생을 외면한 채 정쟁과 이념논쟁만 일삼는 정치권과, 경제현실과는 동떨어진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이 24일 한 강연회에서 정치권 4대입법 대립 등 소모적인 논쟁에 대해 "경쟁력과는 관계없는 곳에 국력이 소모되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대한상의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58%가 "좌파는 아니지만 이상에 치우쳤다"고 응답했고 경기 대책과 기업개혁에 대해서도 절반 이상이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들이 너무 비관론에 빠져있다고 낙관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참담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토대로 한 정책을 만들어내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개혁'이란 명분을 앞세워 민간경제계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거나 구태의연한 이념논쟁으로 소일한다면 경제회복은 더욱 요원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