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 고려대 총장 president@korea.ac.kr > 도쿄는 물가가 비싸기로 악명 높다. 분식을 좋아하는 나는 도쿄에 가면 우동을 즐겨 먹는데,단무지 하나만 달랑 딸려 나오는 우동을 보게 되면 넉넉한 청계천 칼국수 집 생각이 절로 난다. 도쿄 물가가 비싼 것은 비싼 땅값이 주된 원인이다. 그런데 이런 도쿄 한복판에 지금도 수천 평이 넘는 보리밭들이 있다. 89년 무렵이다. 그때 나는 도쿄 한복판에서 전철로 20분 정도 떨어진 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됐다. 토끼장 같이 지어진 아파트 옆에 족히 수천평은 넘어 보이는 보리밭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도쿄 한 복판에 보리밭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지인이 웃으며 이렇게 설명해줬다. "이 주변 땅들은 대부분 원래 여기 농민들이 소유하고 있어요. 이 분들은 갑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농사를 짓는데,농사가 좋아서라기보다 땅을 농지로 사용해야 세금이 싸지기 때문입니다. 보리는 심어 놓기만 하고 잘 돌보지 않아요. 일본의 지자체나 자민당은 농민들,그러니까 실제로는 부유한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지요. 조세 제도든 뭐든 이런 분들에게 유리하게 짜여져 있어 우리 같은 월급쟁이 교수들은 집 한 채 사기가 힘들어진 셈이지요." 90년대 이후로는 일본 부동산 신화도 깨졌다. 도쿄 땅값은 10년 이상 하락 중이다. 버블이 한창일 때,농민들은 땅을 판 돈을 농협에 맡겼는데 농협은 그 돈을 주택 금융기관에 빌려주었고 주택 금융기관은 다시 그 돈을 부동산 업자에게 빌려 주었다. 그렇게 돈이 돌면서 땅값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다 땅값이 폭락하자 일본 정부는 농협의 대출금 회수를 돕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고,기업과 도시 근로자들이 세금으로 그 돈을 또 부담해야 했다. 경제 성장과 삶의 질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에서 땅부자가 보리 농사꾼 행세를 하고,샐러리맨들은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씩 출근길에 시달려야 한다. 정부가 통근을 위해 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하는 사회는 겉으로는 성장하고 있는 듯이 보여도 국민들 삶의 질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도 부동산 문제로 갈등이 심하다. 집 없는 서민들,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은 집 마련 때문에 고민이 많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값이 계속 상승하는 것을 보면서 도쿄의 보리밭처럼 언젠가는 거품이 꺼지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 [ 7~8월 한경에세이 필진 바뀝니다 ] 한경에세이 필진이 오늘부터 바뀝니다. 7∼8월 한경에세이를 써 주실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희국 LG전자 사장(월)=△48세△서울대 전자공학과,미 스탠퍼드대 전기공학 석·박사△83년 LG반도체 MOS공장장△99년 LG전자연구소 총괄 부사장△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한국과학재단 이사,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화)=△52세△서울대 전자공학과,미 매사추세츠주립대 전자공학석사,스탠퍼드대 공학박사△85년 삼성전자 미국법인 수석연구원△96년 삼성전자 부사장△2000년 디지털미디어 네트워크 총괄 사장△2001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 ◆양윤선 메디포스트 대표(수)=△40세△서울대 의과대,서울대 의대 박사△89년 서울대학병원 임상병리과 전공의△94년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전문의·교수△현 메디포스트연구소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목)=△59세△고려대 경영학과,미 미시간대 경영학 박사△79년 고려대 경영대 부교수△93년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소장△96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장△2002년 한국경영학회장△2003년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자문위원장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대표(금)=△59세△서울대 상학과,미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69년 한국은행 업무부△92년 은행감독원 감독기획국 부국장△98년 금융감독위원회 통합기획조정단장△2000년 금융감독원 부원장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토)=△46세△서울대 미학과,서울대 피아노 석사,미 가톨릭대 피아노 박사과정△90년 추계예술대 음악학부 교수△2002년 한국피아노학회 부회장△현 한국피아노듀오협회 부회장,동아음악콩쿠르 심사위원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