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수많은 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대기업 경영자,자영업 사장,정부관리,그리고 변호사,회계사 같은 전문가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최고경영자 과정이다. 보통 1주일에 두 번,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공부를 하는데,사회 일각에서는 경영자들이 공부보다 인맥형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갈파한 대로 '시장 사회'에서 '네트워크 사회'로 이전하고 있는 오늘날 인맥형성도 사회생활에 있어 중요한 능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비판에 너무 기가 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국 경영학계에서도 동양 사회에 존재하는 경영자 간의 인간관계를 중국어 발음으로 '관시'(guan-shi·關係)라고 부르면서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몇 년간 중국 여러 대학을 방문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최고경영자 과정을 중국 대학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다가 최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지난 2월 톈진(天津)시에 소재한 난카이대학(南開大學)으로부터 산둥성(山東省) 성도인 지난(濟南)시에서 4일간 경영전략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4일간,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하루 9시간씩 진행하는 강행군이었다. 보통 국내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진행하는 80분짜리 특강과 달리,이번 중국 과정에서는 같은 주제에 대해 경험이 풍부한 중국 최고경영자 50명과 30여시간에 달하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어서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마지막 시간에 필기시험을 보고,자기 회사를 대상으로 한 사례를 기말 리포트로 작성해서 제출하는 등,20∼30대 학생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었다. 관시를 중시한다는 중국 경영자들이 정작 경영학 공부를 하는 모습은 한국 경영자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고 진지한 것이었다. 그러면 중국 프로그램처럼 경영자가 각 주제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본격적인 공부를 하는 프로그램이 우리나라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난카이대학의 프로그램 담당자에 의하면 중국 최고경영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목요일에서 일요일까지 한 과목을 수강하는데,1년 반에 걸쳐서 15과목을 이수한 후에 정식으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 중 5과목은 중국에서 공부한 중국 교수가,5과목은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중국 교수가,나머지 5과목은 외국인 교수가 강의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있고,그 중 한 과목을 내가 외국인 교수로서 가르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이 설명을 듣는 순간 그 동안 내 머리를 괴롭히던 숙제가 환하게 풀렸다. 국내 경영대학에서는 최고경영자들에게 이런 학위과정을 제공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모든 경영대학은 교육부와 대학교 본부에서 정해준 학생 정원범위 내에서 경쟁적인 입학시험을 통해서 학생을 뽑아야 한다. 또 과정 운영에 있어서도 교육부에서는 많은 제약을 풀어주었지만,아직 대학교 안에서는 다른 대학에서 진행되는 과목들과의 공동 운영을 위해 3월과 9월에 시작해서 15주를 수업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초에 중국 재정부장이 선언했듯이 중국은 '초급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를 뛰어넘어 성큼성큼 선진국 대열로 나아가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최근에 발표된 IMD의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보여주듯이 대학교육의 경제적 수요 충족 면에서 60개국 중 59등이라는 한심한 모습이다. 우리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국은 물론,중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진적 경영기법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한다. 경영자 교육에 있어서는 한 주제당 80분밖에 할당할 수 없는 최고경영자 과정뿐 아니라 저녁과 주말에 진행하는 석사·박사학위 과정을 개설해 중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경쟁력을 가지고 한국경제를 대표할 수 있는 전문경영자를 개발해야 한다. dscho@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