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을 상대로 한 정치권의 불법자금모금 행태가 검찰수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검찰은 대기업을 협박해 거액의 불법자금을 받아낸 정치권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검찰은 지난 12일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된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의 영장에서 "기업들을 상대로 '집권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은근한 압력을 동원해 수백억원의 정치자금을 조직적으로 요구해 받아낸 것으로 사안이 매우 중하다"며 엄중 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의원의 구속영장에 따르면 재작년 10월말∼11월초 김영일 의원은 당 재정위원장인 최 의원에게 "SK에 대선자금 지원요청을 해달라.1백억원 정도면 될 것"이라고 불법 모금을 지시했고, 최 의원은 김창근 SK구조조정본부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SK 손길승 회장 등은 한나라당에 자금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보통신위 등에서 KT 인수 문제 등을 거론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요구대로 불법 대선자금을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에 대한 지원요청도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 김 의원의 지시를 받은 최 의원은 삼성구조조정본부 윤모 전무에게 "대선에 상당한 자금이 든다. 지구당 숫자만 해도 2백개가 넘는데 각 지구당별로 1억원씩만 해도 2백억원 아니냐"면서 "삼성이 큰 연락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해 사실상 반강압적으로 부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의원은 또 평소 일면식도 없는 당시 LG그룹 강유식 구조조정본부장에게도 갑자기 연락을 하고 찾아가 "예년과는 다른 규모를 기대하고 있다"며 거액의 정치자금을 요구했다. 한나라당이 사전 모금회의를 거쳤다는 일부 진술도 영장에 나와 있다. 검찰은 "다른 그룹에도 의원들이 나눠 연락하고 있다. SK 1백50억원, LG 2백억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 규모에 맞춰 대선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말했다는 삼성측 진술에 비춰 최 의원 등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모금에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최 의원은 삼성과 LG가 낸 정치자금이 예상보다 적어 추가로 자금을 요구했을 뿐이라며 범행사실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며 정치권의 행태를 질책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