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미국에서 발간된 '여성의 성적행동(Sexual Behavior in the Human Female)', 일명 '킨제이 보고서'는 여성의 성(性)문제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최초의 보고서였다. 이 책은 발간되자 마자 12개국에서 즉시 번역되었고 당시로서는 경이적이라 할 25만부가 한달새 팔려나갔다고 한다. 8백42쪽에 이르는 이 책은 통계와 도표가 대부분이지만,그동안 금기시해 오던 동성애 자위 혼외정사 매춘 등의 주제를 다뤄 언론과 의회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일부 가톨릭교구는 신도들에게 이 책을 읽지 말도록 권했고, 해외에 주둔한 미군병사들은 아예 이 책의 접근이 금지됐다. 성연구를 지원해 오던 록펠러재단이 후원금을 중단할 정도였다. 2차대전 이후 여성들에 대한 보수적 시각이 완화되기는 했으나,여성이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을 좀처럼 용납하려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귀엣말로나 섹스얘기를 속삭이던 시절 앨프리드 킨제이 박사가 오르가슴과 남자의 성기를 노골적으로 언급하고,절반 이상의 여성이 혼전경험이 있는데다 여성의 19%가 동성연애 경험이 있다고 발표했으니 발칵 뒤집힐 만도 했다. 그는 킨제이 보고서에 5년 앞서 '남성의 성적행동'이라는 책을 내놓았으나 사회적 반발이 이토록 거세지는 않았다. 하버드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킨제이 박사가 섹스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이었다. 인디애나대에서 결혼에 대한 강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강의준비를 서둘렀으나 이 분야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함을 알게 된 뒤 직접 조사에 나선 것이다. 그는 미 전역에서 무려 1만7천회 이상 1대1 면담을 해 1만2천건의 의미있는 자료를 뽑아내 두 권의 책을 썼다. 성문제 연구를 지원했던 인디애나대가 킨제이보고서 발간 50주년을 맞아 올 한햇동안 여성의 건강,성생활을 주제로 한 강연회 전시회 영화제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인다는 소식이다. 여권운동과 맞물려 있는 여성의 성문제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어떻게 정립될지 큰 관심이 아닐 수 없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