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는 전운이 감돌고 아시아에선 북한 핵위기가 불거져 나오고... 2003년은 불확실한 것도 모자라 혼란속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석학으로 꼽히는 장 클로드 베르텔레미 파리1대학(팡테옹 소르본) 국제경제학 교수는 북한의 핵위기와 미국.이라크전쟁 우려에 휩싸여 있는 계미년의 세계를 이같이 표현했다. 그는 "북한의 핵 위기가 고조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한국"이라며 국제사회가 북한으로 하여금 이성을 되찾도록 하는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의 확대와 관련, "EU의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공산권의 민주화와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 대담 = 강혜구 < 파리 특파원 > ] ----------------------------------------------------------------- -중동에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세계경제에 어떤 파장이 있을까요. "경제적 리스크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더욱 큽니다. 지난 91년의 걸프전 상황과는 달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이 극에 달한 지금 중동에서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당시에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략한데 따른 것이라 회교국들의 반감이 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 회교권의 종교적 유대감을 결속시켜 온건파 회교국가의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위험이 큽니다. 회교도 원리주의자들은 반미주의를 부추겨 온건 회교도의 정권을 위협하고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무분별한 국제테러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유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적으로 나쁜 파장이 이미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유가는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설 때문만이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파업 영향으로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전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산유국에서 장기 파업이 일어나고 있으니 시장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지요.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되더라도 갑자기 세계증시가 폭락한다든지 하는 사태는 없을 것입니다. 관광산업 등 관련 업계의 위축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겠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입니다. 세계증시는 신경제 거품이 빠지고 엔론과 같은 대기업들의 회계부정 등으로 바닥 수준에 근접해 있습니다.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원유 생산량이 급격하게 떨어져 미국의 공격을 다시 받는다 해도 국제석유시장의 수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미국.이라크전이 장기화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반미감정이 고조되고 회교 과격파들이 득세할 경우 중동 산유국이 정치적으로 불안해지면서 국제유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북한의 핵위기가 새로운 국제문제로 부상했습니다. "2001년 9.11 테러의 후유증으로 시작된 지난해는 한마디로 복잡하고 불확실한 한해였지요. 그런데 2003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터져나온 북한의 핵문제로 세계는 불확실성을 넘어 혼란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특히 중동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불거진 북한의 핵문제는 북한의 저의가 무엇이든 간에 국제사회에 불행한 일입니다. 북한 핵위기가 고조될 경우 최대 피해자는 바로 한반도입니다. 특히 6년 전 아시아를 강타한 경제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고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를 통해 더욱 굳건한 모습으로 일어선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클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과 유럽,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그나마 한국은 높은 성장률로 아시아경제를 지탱해 왔습니다. 경제위기를 교훈삼아 구조개혁을 이룬 한국은 새로운 비상을 위한 준비를 완료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중요한 시점에 북한 핵위기가 재발한다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큰 불행입니다."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EU회원국들은 북한의 핵위협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은 북한이 이성을 되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보조를 맞춰 북한으로 하여금 위협이나 협박으로 뭔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과거의 망상에서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혼란스러운 이유가 있을 텐데요. "지금 우리를 혼란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일련의 사태는 9.11 테러에서 시작됐습니다. 전문가들의 여러 분석을 보면 강대국과 빈곤 약소국 간의 빈부격차가 과격 이슬람주의 바람을 일으켜 비회교도 선진국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남북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가 국제테러라는 엄청난 파괴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햇동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활발한 논의는 있었지만 선진국들의 이기주의와 국제기구의 리더십 부족으로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했습니다. 작년 8월 남아공에서 열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 정상회의(WSSD)'를 보면 국제적 공조 협력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어느 때보다 국제적 차원에서의 공조가 필요하지만 눈앞의 국가적 이익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문제는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이 아닌 국제기구에서 다뤄져야 하며 선진국들은 자국 이기주의를 버리고 세계가 다함께 번영하는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난해는 EU에 아주 의미있는 한해였습니다. 1월에는 유로화가 실생활 유통에 들어갔으며 연말 덴마크에서 열린 EU 정상회담에서는 동구 및 지중해 국가 10개국을 추가 회원국으로 가입하는 안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유럽의 좋지 않은 경제상황으로 볼 때 EU 확대작업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습니다. "유로화로의 전환과 통용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지난 2년간 약세를 면치 못하던 유로화 가치가 이젠 달러화에 대해 1 대 1의 대등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유로화 상승이 강한 유럽경제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저달러 정책 조짐 등 외부적 요인이 더 강하게 작용했지만 어쨌든 유로화의 성공적인 실생활 데뷔라고 생각합니다. EU 확대에는 상징적 의미 그 이상의 뜻이 있습니다. EU의 중요한 기둥인 프랑스와 독일경제가 좋지 않아 EU 확대작업이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EU 경제가 어렵다 보니 예산분배에서도 갈등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EU 확대는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더라도 기존 회원국이나 신규 가입국들에게 잃는 것보다 얻는게 훨씬 큽니다." -EU 회원확대가 결국 유럽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지적으로 들립니다. "동유럽국가들의 EU 가입 절차와 과정이 문제가 없는 탄탄대로는 아니지만 기존 서유럽 중심의 EU는 이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신규 회원국 가입은 현재 활력을 잃은 EU경제에 어느 정도 윤활유 역할을 하리라 봅니다. 유럽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선 안정된 유럽이 필요합니다. 동유럽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개발은 서유럽의 지속적인 성장에 중요한 조건입니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은 이들로 하여금 EU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지요." < bellissim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