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치며 사심없이 반짝이는 그들의 눈동자 속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랑을 배운다. "왜요? 누가요? 언제요?" 삐악삐악 사정없이 물어대는 그 왕성한 호기심 앞에서 때론 긴장하지만 아이들의 물음표들이 내 귀를,내 눈을 자주 즐겁게 한다. "선생님 옛날 별명이 뭐였어요?" 며칠 전 별명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꼬박꼬박 졸고 있던 녀석이 금세 잠을 털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학창시절 내 별명은 땡삐였어." "땡삐가 뭐예요?" "독성이 강하고 성질이 못된 벌의 일종이지." "그럼 선생님 성질이 괴팍했어요?" "그래 선생님 여학교 시절엔 한 성질 했단다." 침을 쏘고 나면 자신도 죽으면서 목표물이 정해지면 사정없이 공격하는 투지의 땡삐로 불렸던 단발머리 그 시절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아이들의 주위를 환기시키려고 나는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시를 읽었다. '"아야!"/"아우 아파"/책상 모서릴 흘겨보았다./"내 잘못 아냐"/모서리도 눈을 흘긴다./쏘아보는 그 눈빛이/나를 돌아보게 한다./어쩜 내게도/저런 모서리가 있을지 몰라./누군가 부딪혀 아파했겠지/원망스런 눈초리에/"네가 조심해야지."/시치미를 뗐을 거야./모서리처럼 나도 그렇게 지나쳤겠지./부딪힌 무릎보다/마음 한 쪽이/더 아파 온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이 시는 분명 내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나는 땡삐라는 별명답게 참으로 많은 모서리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미처 모르는 모서리까지 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피멍들게 했을까? 그때마다 내 잘못이 아니라 부딪힌 너희들 잘못이라고 또 얼마나 독하게 쏘아 봤던가? 회한이 밀물처럼 밀려와 나는 가슴 한 쪽만 시려오는 것이 아니라 심장의 판막이 사라져버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했다.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난날 내 별명이 그날 가르쳐야 할 모서리라는 동시 한 편을 만나 나는 적절한 다른 비유 없이도 그 모서리의 무서움을 아이들 팔딱거리는 가슴에 문신처럼 선명하게 새겨주면서 마무리를 했다. "나 요즘 별명은 베짱이다. 어린 시절 내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 입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베짱이…." 그래! 땡삐가 세월이라는 강물을 타고 흐르면서,모서리를 버리게 하는 것은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라 둔탁한 사랑임을 이제 알게 되었다. bezzang08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