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액 비중이 세계 4위라는 보도가 얼마 전에 있었다. 물론 절대규모로는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진국에 많이 뒤지지만,우리나라의 경제 형편을 생각하면 결코 적지 않은 액수가 연구개발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연구개발비가 장기적 안목으로 그에 필적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사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가장 염려되는 것은 연구개발비의 대부분이 당장 응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에만 집중 배정됨으로써 중요한 장기적 관점의 연구는 사장되고 있는 현실이다. 연구개발 지원정책입안자들이 기초과학연구는 의중에 없고,눈에 보이는 응용성과 그에 연관된 기술에만 관심이 있는 결과다. 예를 들자면 암세포치료법과 신약개발에만 관심이 있지,정상세포가 어떻게 암세포로 변화할 수 있는지 그 생명현상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명현상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는 치료법과 신약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2002 월드컵은 기본 체력 없이는 좋은 축구경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를 목표로 하는 튼튼한 기초과학의 기반 없이 궁극적인 원천기술개발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책입안자들은 여전히 기본적인 원칙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 중 기초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2.6%로 다른 선진국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이 기초연구비가 인기주제에만 집중되는 문제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초과학은 대부분 실험학문이다. 그러므로 연구비 없이는 아주 단순한 연구도 진행하기 힘들다. 또 1∼2년 간의 연구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축적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효율과 생산성을 중시하는 선진국들이 기초과학의 다양한 연구에 투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한 방증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체의 연구개발비가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정부의 연구개발비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기업체들이 지원할 수 없는 기초연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소위 인기라는 IT BT NT 등 몇몇 분야,또 그 분야 내에서도 선진국에서 유행 중인 몇몇 분야로만 연구개발비가 집중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는 마치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하던 70,80년대처럼 앞장서서 몇몇 분야를 유망분야라고 선별한 후 인위적인 연구단을 조직해 집중 지원하는 식의 연구개발 지원 정책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반면 많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개발한 선진국들은 당장 연구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다양한 기초 분야의 연구들을 일관되게 지원하고 있다. 이는 어떤 분야의 연구가 미래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없는 기초과학의 특성을 잘 이해하기에 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빨리 인식해야 한다. 지금 유행으로 보이는 BT나 NT의 기저가 되는 생명과학과 물리학이 20∼30년 전에는 전혀 인기 없는 기초과학이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때 유용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런 연구들을 소홀히 했다면 오늘의 BT NT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이런 연구개발 지원정책은 아직 전문가 층이 두껍게 형성되지 못한 우리의 현실에서 '연구비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기초과학의 특성'상,많은 연구자들이 철새처럼 자기의 전문성을 버리고 연구비가 집중되는 분야로 떠도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자기분야에 매진해도 선진국들과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든 우리의 상황에서 국내연구의 전반적인 경쟁력을 감소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연구개발 정책 입안자들이나 연구자들 모두 수해복구에 지원될 수도 있는 자원이,또는 결식아동들을 배불리 먹이기에 충분한 국민의 세금이 연구개발비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과연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더 늦기 전에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bc5012@yonsei.ac.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