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과 모니터그룹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56.모니터그룹 GBN 회장) 초청 강연'이 17일 오후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렸다. 한국경제신문이 세계적인 석학과 전문가를 소개하기 위해 마련한 'Thought leaders 시리즈'의 첫번째 행사인 이날 강연회에는 기업체 기획담당 임원, 경제연구소 연구원, 벤처 최고경영자 등 1백여명이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슈워츠 회장은 이날 강연에서 "놀랄 일들만 생기는 것 같지만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두면 미래를 자신있게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미래와 관련, "더 이상 잘 되기 어려운 선진국들에 비해 한국은 잠재력에 못미치는 성과에 그치고 있다"며 "제대로 교육받은 질 높은 노동력이 많은 만큼 성장 가능성은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요즘 아이들은 소련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도 잘 모른다. 20년 전만 해도 휴대폰이나 랩톱컴퓨터는 없었다. 우리의 예측과는 관계없이 놀랄만한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난다. 그러나 미래에 우리를 놀라게 할 사건들은 현재에 그 실마리를 숨겨두고 있다. 일본의 금융 위기 일본은 과연 금융위기를 피해갈 수 있을까. 몇 해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와 함께 일본 경제의 미래 시나리오를 검토해본 적이 있었다. 결론은 일본이 금융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만나본 일본 각료도 "금융 위기 가능성이 85% 이상 된다"고 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위기를 맞는다고 생각해 보라. 그 파장은 심각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은 위기를 겪어야 변하는 나라다. 메이지유신, 2차대전, 오일쇼크 등을 통해 오히려 거듭났다. 일본이 맞을 위기는 사실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그 파장이 어떨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통합 유럽의 전진 유럽이 단일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다. 범위도 크다. 동유럽은 물론 러시아까지 편입되고 있다. 더블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지역이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통화의 통합은 대단한 성과다. 각국이 자국 통화를 포기한다는 건 상상조차 하기 어렵던 일이다. 미국이 북아메리카를 통합하자면서 달러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이제 유럽은 독자노선을 걸을 것이다. 지난 50여년간 돈독했던 미국과의 관계는 더 이상 없다. 사실 유럽과 미국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인은 70% 이상이 종교를 갖고 있지만 유럽은 관심이 적다. 미국은 경쟁을 중시하지만 유럽은 평등을 더 소중히 생각한다. 유럽은 국제기구 확대에도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유럽은 통합으로 더 번영을 누릴 것이다. 불량배(rogue) 강대국-미국 지금의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나라다. 미국은 이란 이라크 북한 등을 불량 국가라고 부르지만 나머지 나라들은 미국을 불량배라고 여긴다. 세계에는 세 가지 그룹이 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미국, 규칙을 지키는 산업국가들, 그리고 규칙을 안지키는 국가들의 세 무리다. 이 가운데 미국을 뺀 나머지는 미국을 거부하기 위한 연대라고 봐야 한다. 10년 내에 미국이 가진 다른 나라와의 국제적 연대는 끝날 것이다. 유럽과 중동은 물론 한국과 일본에 있는 미군 기지도 사라질 것이다. 정부 파워의 부활 최근 20년간 '시장'은 정부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전 총리는 시장개방을 가속화시켰다.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전력 위기는 민영화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영국의 철도도 민영화되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최근 미국의 회계관련 스캔들도 규제완화의 와중에 생겨난 부산물이다. 이제는 시장에 비해 정부의 힘이 더 강해질 것이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2만3천달러를 자랑하는 싱가포르는 정부의 힘으로 그런 성과를 올렸다. 종교와 세속의 갈등 20세기는 이념의 세기였다. 서방과 파시스트,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결이었다. 그런 구도는 이제 사라졌다. 그 대신 종교와 세속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이슬람과 세속 세계와의 다툼은 더 심해진다. 이념이 문제될 때는 사회적 절충이 가능하다. 종교는 믿거나 안믿거나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중재가 어렵다. 오사마 빈 라덴을 보라. 이슬람권에서는 그를 메시아(구세주)로 본다. 목숨을 던져 그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 있다. 자유시장 경제를 위해, 규제완화를 위해 목숨을 던질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새로운 화약고 10년 내 세계의 화약고가 될 나라들은 아일랜드도 이스라엘도 아니다. 첫 번째로 인도네시아를 들 수 있다.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변화를 겪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이슬람국가로 인구가 3억명이나 된다. 석유와 가스의 주요 수출국 가운데 하나인데다 천연가스 공급국가인 브루나이도 영향권에 두고 있어 인도네시아에서 문제가 생기면 파장이 엄청나다. 두 번째 화약고는 사우디아라비아다. 현재 집권층인 알 사우드 왕가에 급진 계열이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이란에서와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세 번째 화약고는 콜롬비아화되고 있는 멕시코다. 최대의 마약 수출국인 콜롬비아가 멕시코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가 마약수출국이 되면 북미지역에서도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에너지 문제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적지 않다. 그러나 경제성을 맞추며 채굴하는 기반이 아직 갖춰지지 못했다. 그래서 공급은 계속 달린다. 앞으로 10년간 에너지 가격은 엄청난 불안을 보일 것이다. 각국은 기술적 변화로 이 어려움을 헤쳐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발전소 규모가 작아지고 원자력 사용이 늘어나게 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15~20년 후에는 원자력이 가장 청정한 에너지로서 각광받을 것이다. 세계 곳곳의 금융위기 금융위기는 규제를 풀고 혁신조치를 취할 때 생긴다. 87년 미국의 증시폭락도 프로그램거래가 실시되면서 발생했다.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는 중국이다. 지난 97년에는 위기관리를 잘해 그나마 피했다. 그러나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는 과정에서 외국자본이 유입되고 있어 위험도는 높아지고 있다. 향후 10년 내에 중국은 금융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인도의 경우는 중국에 비해 가능성이 낮지만 역시 안전하지 않다. 환경 변화 지구온난화는 화석연료 때문에 생겨나고 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사는 것이 좋아진 나라도 분명히 있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아니다. 최근 지구가 원래 1세기동안 10~15도 정도씩 날씨가 들쭉날쭉했고, 기후가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온난화보다도 지구가 예전의 이런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게 더 문제다. 농업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세계 각 지역의 기후는 지금과는 완전히 바뀔 것이다. 과학 혁명 미 국방성이 연구하고 있는 양자컴퓨터는 10의 9승의 용량으로 지금보다 수천억배는 강력한 컴퓨터다. 기술을 통한 번영이 계속될 것이다. 특히 동아시아에 기회가 생길 것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최고경영자(CEO) 40% 이상이 아시아에서 온 사람이다. 미국에도 아시아 출신의 물리학 박사가 가장 많다. 한국 싱가포르 중국 등이 가장 중요한 축이 될 것이다. 정리=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 ----------------------------------------------------------------- [ 피터 슈워츠 누구인가 ] 피터 슈워츠는 시나리오 기획(Scenario Planning) 분야에서 대가(大家)로 꼽히는 미래학자다. 모니터그룹 계열 글로벌비즈니스네트워크(GBN) 회장으로 각국 정부와 주요 기업에 미래 전략을 자문하고 있다. 에너지 환경 기술 금융 정보통신 등 모든 분야가 그의 연구 대상이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와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그와 친구처럼 지내며 자문을 받는 유명 인사들이다. 슈워츠는 지난 1980년대초 로열 더치 셸 그룹에서 시나리오 기획을 총괄하면서 이 회사가 세계 에너지 업계 정상에 올라서는데 크게 기여했다. 저작 쪽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 'The art of long view'를 비롯 'China's Futures' 등 6권의 미래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