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대 과학사 교수 > 나이 탓일까,우리 역사를 공부하기 때문일까. 청계천이 복구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있다. 기술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는 모르지만,청계천의 옛 모습을 되살려 놓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개인적인 회상과 함께 공부하는 과학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1957년 대학 입학과 함께 청계천을 처음 구경하게 됐는데,그 때만 해도 이 개천(開川=청계천의 첫 이름)에 대해 갖고 있는 기억이라고는 그 주변에 서 있던 수양버들 정도다.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나는 것은 그 양쪽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상점들이다. 길바닥에까지 상품을 늘어놓고 장사하던 풍경은,1960년 4·19에 친구들과 바로 그 골목길을 달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기억된다. 그 때의 청계천은 고약한 냄새가 진동할 지경이었던 것도 기억한다. 이 부분은 되살릴 필요가 없을 터이다. 그리고 이왕 청계천을 되살리려면 연세대 사학과의 이희덕 교수가 주장했듯이 '역사 복원'이 우선돼야 마땅하리라 생각된다. 그 역사 복원의 대표적인 한 가지가 지금 서울 장충단공원 입구로 쫓겨나 있는 수표교(水標橋)를 되세우는 일이다. 아울러 수표(水標)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할 것은 물론이다. 청계천 본류를 되살린다고 해도,지금 종로1가 큰 길 한복판에 해당하는 혜정교(惠政橋)를 다시 만들어 놓기는 어렵겠지만,그것도 어떻게 흉내라도 내고,그 위에 해시계(仰釜日晷)를 세웠으면 좋겠다. 조선왕조 3대 임금 태종이 1406년 파기 시작한 개천은 조금씩 모습을 바꿔가며 5백50여년을 지나다가,60년대 개발 논리에 밀려 복개(覆蓋)에 이르게 된다. 그 사이 영조 때 대규모 준설공사가 있었던 기록도 보인다. 바로 이 수표교와 준설공사가 모두 한국역사의 중요한 대목이 된다. 청계천에는 다리가 아마 6개 이상 있었고,그 지류(支流)에도 다리가 여럿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광교(廣橋) 수표교 혜정교다. 특히 수표교는 마전교(馬前橋)라 하여 세종 2년(1420)에 세워졌다. 그리고 세종 23년(1441)에 그 다리 서쪽에 수표(水標)를 만들어 세워 청계천의 수위를 측정해 홍수에 대비했다. 그로부터 이 다리는 수표교라 불리게 됐다. 화강석으로 만든 이 돌다리(石橋)는 청계천이 덮여지자 장충단공원 입구로 옮겨져 다행히 오늘까지 남아 있다. 수표교 서쪽에 세운 3m 높이의 수표엔 눈금을 그려 놓았는데,개천의 물이 수표 아래 부분을 흐르면 가뭄을 나타내게,수위가 가운데 부분을 가리키면 보통,그리고 윗 부분을 지나면 홍수위험으로 여겨졌다. 세종 때의 수표는 원래 나무로 만들었던 것이지만,언젠가 돌로 다시 세웠고,그것이 지금 전해져 온다. 역시 세종이 만든 측우기와 함께 강우량 또는 하천의 흐름을 측정하던 우리 조상의 과학적 관심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전세계 다른 나라 어디에도 1440년 전후에 우리의 수표나 측우기 같은 과학적 도구를 만들어 수량을 측정한 일은 없다. 대단히 자랑스런 유산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수표가 장충단공원으로 퇴거당할 때,수표는 홍릉의 세종기념관에 옮겨져 지금 거기 세워져 있다. 수표 바닥에는 '기사대준(己巳大濬)'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기사(영조 25=1749)년에 청계천을 준설했다는 기록일 것이다. 청계천이 복원되면 수표교와 수표가 제자리를 되찾아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과학적 지혜를 대변해 줄 뿐만 아니라,외국인에게는 훌륭한 관광 자료가 될 것도 분명하다. 이 아니 기쁜 일인가! 그런데 청계천의 지류에 있던 다른 돌다리 혜정교는 지금 광화문우체국 옆 종로 길 한복판에 있었다. 세종은 이 다리위에 대중용 해시계 앙부일구를 만들어 세웠다. 종로를 다니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시간을 알 수 있도록 공중 해시계를 세운 것이다. 청계천을 되살리면,수표와 수표교야 당연히 그 자리를 다시 찾겠지만,청계천 지류에 있던 혜정교를 지금 다시 그 자리에 복원하기란 불가능할 듯하다. 종로1가에 다리를 놓고,거기 해시계를 복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복원될 청계천의 혜정교 가까운 햇볕 드는 자리에 앙부일구도 세우고,그 설명을 해주는 것은 어떨까? parkstar@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