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삽살개 受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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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민화에 문배도(門排圖)라는 것이 있다.
정초에 악귀를 쫓기 위해 대문에 붙이는 세화인데 닭이나 호랑이 닭 개를 도형화한 것이 많다.
"삽살개가 있는 곳엔 귀신도 얼씬 못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개를 그린 문배도는 삽살개가 모델이다.
삽살개는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의식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삽살개는 진돗개 풍산개보다 오랜 내력을 지니고 있다.
신라 33대 성덕왕의 아들로 당나라에 건너가 지장보살로 추앙됐던 김교각이 신라를 떠날 때 데리고 갔던 개가 삽살개였다고 한다.
일본 신사 문 좌우에 만들어 놓은 석상 '고마이누'는 '고려의 개'란 뜻으로 삽살개라고 한다.
"개야 개야 삽살개야…"로 시작되는 통영지방의 '개타령'은 주인공이 삽살개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의 명으로 춘향의 집을 찾아온 방자를 향해 사립문 앞에서 컹컹 짖던 개도,정지용이나 노천명의 시에 나오는 개 역시 삽살개다.
삽살개는 이처럼 우리 정서속에도 넓게 자리잡고 있다.
신라 때부터 왕실이나 귀족사회에서 기르다 신라가 망한 뒤 민가로 흘러나왔다는 삽살개는 이름 자체가 "살(액운)을 쫓는다"는 뜻을 지녀 '신선개''복개'로도 불렸다.
온 몸이 긴 털로 뒤덮여 있지만 눈빛은 무서울 만큼 빛나고 주둥이가 뭉툭해 해학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청삽살개와 황삽살개가 있고 한반도의 남동부에서 주로 길렀던 고유의 특산종이다.
하지만 멸종되다시피한 삽살개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60년대 중반에야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삽살개가 천연기념물 386호로 지정된 것은 92년이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중 항공용 방한복 등 군수품제작을 위해 1백만마리가 넘는 토종견을 도살한 탓으로 삽살개가 멸종위기에 처했다며 한국삽살개보존회가 일본총리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당시 문서까지 찾아 제시했다니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니다.
오늘 방한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이런 일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미래를 알려거든 먼저 지나간 일을 살피라(欲知未來 先察己然)'는 옛 말이 있다.
고광직 논설위원 kj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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