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 본사 독점전재 ]

하락하는 통화가치,약세를 면치 못하는 증시,치솟는 기업부도….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는 현상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99년,2000년에 7% 전후의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최근들어 다시 경기둔화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경제는 올 1·4분기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97년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었던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등은 회복세를 찾았지만 요즘은 그마저 위태롭다.

정책결정자들과 국제기구들은 제2의 금융위기 조짐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상황이 97년보다 더 암울하다.

당시 아시아 국가 대부분은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까지 폭발지경이다.

반면 당시와 비슷한 점도 있다.

바로 수출둔화 현상이다.

미국 접경국들을 제외하면 동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미국 경기에 민감한 지역이다.

아시아지역(일본제외)의 국내총생산(GDP)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37%에 달한다.

설상가상으로 이 수출중 미국 하이테크 산업에 의존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

이코노미스트들은 현재 상황이 단순한 경기순환상의 침체이상으로 심각하다고 우려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미국기업들은 그동안 IT분야에 과도한 투자를 했다.

따라서 미국경기가 V자형 회복을 한다 하더라도 IT지출은 같은 형태로 회복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둘째,일본의 신임 고이즈미 정부는 엔저정책을 펼 것으로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점치고 있다.

97년에 경험했듯 엔화가치가 떨어지면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통화가치 평가절하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아시아 기업들은 대부분 달러화 표시 부채를 지고 있다.

통화가치 평가절하는 아시아 기업들에 위험천만한 일이란 얘기다.

이런 요인들은 당장 위기를 촉발한다기보다 장기적인 경제상태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연례회의에서 갑작스런 금융쇼크에 대한 아시아 각국의 면역성이 지난 97년보다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자국의 통화를 달러화에 고정해 놓은 국가는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뿐이다.

이중에서도 말레이시아만이 우려의 조짐이 있다.

과거 금융위기를 겪었던 5개국은 이제 경상흑자국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낙관론을 펴기도 한다.

프랑스 증권사인 SG의 싱가포르 지점에 근무하는 이코노미스트 마누 바느카랑은 현재의 미국 경제상황이 오히려 아시아에 호재라고 주장한다.

그는 미국기업들이 해고를 많이 할수록 아시아 전자제품에 대한 미국의 수입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이 인력을 자르는 대신 기계화를 가속화하기 때문에 아시아산 전자부품이 필요하게 된다는 것이다.

낙관론자중에는 중국을 근거로 대는 부류도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 위협적인 나라로 비쳐져왔다.

아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중 5분의4를 중국이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은 기회도 제공한다.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있다.

가입이 성사되면 중국은 아시아 각국에 문호를 더 활짝 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규모는 미국 수요둔화의 자리를 메워주기엔 너무 작다.

일본이나 유럽도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기에 역부족이다.

아시아 각국의 지도자들은 미국경제가 순항하는 동안 내수기반을 더욱 강화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부실기업과 은행에 대해 좀더 철저히 리스트럭처링을 단행하지 않았던데 대해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전세계 경제가 흥얼거릴 때도 아시아는 어려움을 겪었으니 세계경제가 비틀거리는 요즘에야 그 고통이 오죽하겠는가.

정리=노혜령 기자 h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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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25일자)에 실린 기사 ''The east is in the red''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