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길, 창문 너머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봤다. 고등학생들이 졸업 꽃다발을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스무 살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대학 신입생 시절 첫 미팅 자리에서 했던 게임이 문득 기억을 스친다. 남학생들이 쪽지에 단어를 적으면 여학생들이 그중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골라 짝을 이루는 방식이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사랑’ ‘별’ 같은 감성 섞인 단어를 적어냈지만, 나는 그 시절 가장 좋아했던 단어인 ‘길’을 적어냈다.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작은 여학생 한 명이 내 쪽지를 집어 들었다. 왜 ‘길’을 골랐느냐고 묻는 친구의 질문에 “길이라는 단어가 멋져 보여서”라고 답하는 그녀의 모습에 설렜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 캠퍼스를 걷던 풋풋한 청년도 어느새 머리가 희끗한 이순을 바라보는 중년이 됐다. 그날의 설렘도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길’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세 아이의 아빠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그리고 직장에서의 책임감으로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왔던 것 같다. 물론 늘 쉽고 평탄한 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험난한 비포장도로로 빠지기도 했고, 때로는 방향을 잘못 잡아 한참을 헤매다 다시 제자리걸음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나만의 길을 선택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두 가지가 떠오른다.첫 번째는 나만의 자신감이다. 여전히 나는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내 선택이 옳은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선택을 행동으로 옮기기에 앞서, 나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싼 격렬한 논란을 보면서 두 개의 근본적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왜 모든 사람이 그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 것으로 예단하느냐가 첫 번째다. 아무리 야당 추천, 좌 성향 후보자라고 해도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본령이다. 개인적 성향과 별개로 법률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법관과 사법부 독립의 핵심 덕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협의를 걷어찰 정도로 마 후보자 임명에 결사적이고 국민의힘은 그의 편향적 이력을 들어 극력 저지에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웬만한 강심장의 소유자라도 자진 사퇴할 법한데 당사자는 아무런 말이 없다.두 번째 질문은 왜 하필이면 이렇게 논쟁적 인물이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돼야 하느냐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국회·대법원장에게 각각 3명씩 임명(선출)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법원장을 제외하면 대통령이나 각 정당은 임명 과정에 어느 정도의 정파성을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동안 마 후보자 같은 문제적 인물을 추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좌파 성향의 법관들 중에도 법조계 내 학식과 신망이 두터운 사람이 적지 않다. 법률과 판례도 시대 변화에 따라 바뀌는 만큼 진보적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 잘못도 아니다. 그동안 야당이 진영 내 후보자를 임명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자질과 평판이 검증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헌재 구성이 논란을 빚게 된 계기는 사생결단식 정치대결과 잦은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가 급물살을 타면서다. 정치가 내 편, 네 편을 확실하게 가르고 나오자 헌재 후보자들의 풀(pool)은 진영별로 급속히 좁아졌다. 이 틈
인공지능(AI) 패권 다툼이 ‘쩐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빅테크 4인방은 올 한 해에만 AI에 무려 3200억달러(약 464조원)를 쏟아부을 전망이라고 한다. 중국 기업들도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내놓고 있다. 알리바바는 3년간 75조원을 AI에 투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한 해 연구개발(R&D) 예산의 두 배 가까운 자금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미국 빅테크 AI를 능가하는 저비용·고효율 AI를 개발하면서 ‘AI 강국’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美·中에 밀려 설자리 잃는 한국미국과 중국의 AI 패권 다툼은 한국엔 엄청난 악재다. 이들 국가와의 기술 격차가 더 빠르게 벌어질 수밖에 없어서다. 쩐의 전쟁이 치열해질수록 세계 AI 기술과 인재는 블랙홀처럼 미국과 중국으로 빨려들어갈 게 분명하다.한때 정보기술(IT) 강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AI 전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로는 자본력과 인재 부족이 꼽힌다. 업계에선 우리나라의 AI 투자액이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한다. 인재도 마찬가지다. 딥시크는 스타트업인데도 139명의 개발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이 정도 규모의 AI 개발자를 확보한 대기업도 별로 없다.바이오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더 좋지 않다. 구글 알파폴드처럼 단백질 구조를 분석하는 AI를 개발 중인 미국 스타트업 자이라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시드머니로만 무려 1조원을 투자받았다. 여러 차례의 투자 유치에도 기껏해야 수백억원도 모으지 못하는 우리 바이오텍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AI와 바이오를 아우르는 인재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