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지만 보너스는 고사하고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벤처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테헤란밸리에 있는 노동부 서울강남지방노동사무소에는 요즘 임금체불을 이유로 직원들이 사장을 고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주식이 뜰 때를 기대하고 임금을 못 받아도 참아왔는데 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사장이 회사 자금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하거나 축재하면서 직원들에겐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항의가 적지 않다.

세월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든지,아니면 월급을 포기하고 나가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는 것이다.

강남노동사무소에는 올들어 이날까지 8백47건의 고소·고발이 들어와 있다.

대부분 주변의 벤처기업 직원들이 임금이나 해고문제로 제기한 것들이다.

작년엔 연간 고소·고발이 4백49건에 불과했었다.

민원이 이렇게 폭주하는 통에 강남사무소의 근로감독관 20여명은 휴일도 반납하고 조사에 매달리고 있을 정도다.

뉴스와 정보를 컴퓨터화면 상단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솔루션을 개발한 E사 직원 6명은 22일 사표를 제출하고 강남노동사무소에 대표 이모(32)씨를 고발했다.

이들은 이씨가 지난 10월 직원 4명을 일방적으로 해고했으며 넉달째 임금을 미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설립된 E사는 한 벤처캐피털에서 3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등 성장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꼽혔었다.

하지만 코스닥 추락과 벤처기업 비리 사건 등 연이은 악재로 벽에 부딪쳤다.

직원들은 사장 이씨가 5∼6개월 동안 무려 6천만원을 접대비로 사용하는 등 자금을 방만하게 써 회사 사정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가짜 영수증으로 비용을 처리,돈을 빼돌렸다고 고발했다.

요리와 음식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중인 H사에 다니는 정모(31)씨는 5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21일 사장 김모(35)씨를 노동사무소에 고발했다.

정씨는 다른 10여명의 직원도 자신과 같은 처지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사장 김씨는 "자금사정이 경색돼 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얼어붙은 경기가 계속 풀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임금지급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게임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P사 직원 14명중 절반인 7명도 최근 집단사표를 내고 대표 홍모씨를 노동사무소에 고발했다.

이들은 사장이 돈이 있으면서도 8월부터 월급을 주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사장은 "게임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느라 자금을 대부분 써버렸다"며 "당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로 했던 회사들이 잇달아 계약을 취소해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지방노동사무소 이용선 근로감독과장은 "지난 8월부터 임금체불을 호소하는 고발이 집중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코스닥 침체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가 중단된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일부 기업은 사장이 유치한 투자금을 빼돌리고 월급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정대인 기자 big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