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부터 형님 생일때마다 제사상을 차렸었는데 이렇게 살아계신 것을 확인하니 가슴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2일 북한적십자회가 보내온 생사확인의뢰자 명단에 큰형 박상옥(67)씨가 들어있는 것을 본 동생 상범(58.서울 도봉구 창2동)씨는 "어머니께서 항상 ''의용군으로 끌려나간 네 형이 총각으로 죽어 얼마나 배고프겠느냐''며 매년 제사음식을 마련해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서로의 생존을 믿지 않기는 북에 있는 상옥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상옥씨는 지금도 산을 오를 정도로 정정한 89세의 노모 주복연씨의 이름을 아예 생사확인의뢰자 명단에 넣지도 않았다.

50년전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 고광욱(73)씨가 가족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접한 이춘애(72.서울 종로구 창신동) 할머니는 "남편과 생이별하고 아빠만 찾는 큰 애와 갓 태어난 젖먹이 딸애를 번갈아 업으며 맞던 초겨울 바람이 얼마나 시리던지…"라며 반세기 수절의 한을 달랬다.

트럭을 몇 십대나 가지고 있어 당시로는 장성에서 소문난 부자였던 고씨 집안의 맏며느리에서 하루아침에 생과부로 전락해 버린 이할머니는 지난 57년 서울로 올라왔다.

포목상과 식품점 잡화상 의류점 등 손에 잡히는 대로 일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려오면서도 수차례에 걸친 주위의 재혼권유도 뿌리치고 혼자 생활해 왔다.

이 할머니는 "젊은 시절의 남편이 그사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상상이 잘 안된다"며 남편을 만나면 "왜 이제서야 찾았느냐고 따질 작정"이라며 한껏 웃어보였다.

이번 명단에 맏형 백영철(79.김책공대 강좌장)씨가 포함돼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동생 영방(65.경기 성남시 분당)씨는 "올해초 인터넷 북한 인명검색 사이트에서 형님이름을 검색하니 김책공대 강좌장으로 있어 혹시나 했는데 그분이 정말 우리 형님이시라니 감개무량할 뿐"이라며 기뻐했다.

영방씨는 "형님은 50년 당시 서울대 공대(전기공학) 1회 졸업생으로 서울대 등 여러 곳에 강사로 출강하고 있었다"면서 "6.25가 발발한 후 얼마 안돼 8월께 형님이 일행과 산업시찰을 하기 위해 북에 간다고 떠나신 뒤 소식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51년 1.4 후퇴때 형님이 보낸 사람이 형수님과 조카들을 북에 데려가면서 "영철씨는 북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면서 "형님의 능력과 인품으로 미뤄볼 때 형님이 북에서 고위층에 계실 줄 알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에서 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영방씨는 "형님을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선물"이라고 덧붙였다.

북에 있는 임흥근(70)씨가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찾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장조카 임건섭(58·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2동)씨는 "아버지가 3년만 더 살아계셨더라면…"하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건섭씨는 "삼촌은 전쟁이 나던 해 11월께 충북 진천군에서 집안 대표로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아버지는 ''삼촌이 대신 의용군에 끌려갔다''며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 오셨다"고 말했다.

장유택 기자 chang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