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지인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이 메일을 보내왔는데,암만 봐도 첨부한다는 파일이 없었다.
"파일 첨부"를 잊은 게 분명했다.
나 역시도 파일을 첨부한다고 하면서 깜박깜박하는 터라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도 파일이 오지 않았다.
전화를 넣었더니,그 분 얘기인즉 "하하,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파일 첨부하러 다시 컴퓨터에 앉았다가 또 인사말만 쓰고 파일 안 보낸 적도 있구요,하하"
유쾌하기까지 한 웃음에 같이 웃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술 취하지 않고도"필름이 끊기곤 하는"이들에게 위로조로 한 마디 한다.
"그게 다 천재증후군입니다"
며칠전엔 사무실에서 음료수캔 마개를 따 놓고는 잠깐 딴 일하는 사이 잊고 캔을 휙 들다가 주스 세례를 받았다.
건망증이 주는 증거가 주스 얼룩으로 남았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감춘다고 헌 버선 속에 넣어두고 깜박 쓰레기통에 버려 난지도까지 갔지만 못 찾은 사연이며,부부동반 모임에 갔다가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오던 남편이 건물 앞에서 기다리는 아내를 두고 아무 생각없이 집까지 혼자 온 얘기며 건망증에 얽힌 이야기들은 너무 많다.
언젠가는 우산을 갖고 나가는 족족 잃어버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도 인상깊게 들었다.
그 남자의 아내가 신신당부를 한다.
남편은 지하철에서 우산 챙기는 데 신경을 곤두세웠고, 드디어 우산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집에 도착한 남편은 얼굴이 사색이 됐다.
우산은 챙겼는데 중요한 서류가 든 가방을 두고 내린 것이었다.
깜박하는 증세에 다이아몬드나 중요한 서류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정작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잊는 우리네 인생사의 모순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정말 잊어야 할 것,본질을 잊지 않는 것,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스친다.
아무래도 건망증 클럽을 하나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회원 확보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다만 모임을 "지속적으로"진행하는 묘안을 짜는 수밖에.
"건망증 클럽 하나 만들까요?"
이메일에 파일 첨부를 잊은 그 분께 제의했더니,반색을 한다.
"근데,창립 모임부터 제대로 모일 수 있을까요?"
나의 말에 우리는 그냥 와-하고 웃고 클럽 얘기는 "언젠가..."로 연기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