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담속에서 동물이 사람으로 변신하는 순위를 통계내면 뱀 여우 호랑이 용 지렁이 순이라고 한다.

그중 뱀 용 지렁이는 남성을 상징하고 농경민족의 풍년을 비는 다산제의와 관련을 맺고 있다.

미물인 지렁이가 영물에 속해 있고 그만큼 우리와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지렁이는 재생력이 뛰어나다.

몸의 일부가 잘리면 잘린 부분은 원래처럼 재생되고 한 가운데가 잘리면 두 마리가 된다.

한 개체가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을 함께 갖추고 있다.

이런 지렁이의 재생력과 양성에 대한 신비감이 영웅탄생 설화를 낳았다.

광주 북촌 부잣집 딸에게 밤마다 자줏빛 옷을 입은 사내가 찾아왔다가 새벽이면 떠났다.

바늘에 긴 실을 꿰어 사내의 옷에다 꽂아 두었다가 이튿날 실을 따라가 봤더니 담밑의 커다란 지렁이 허리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

이렇게 임신해 낳은 아들이 뒷날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라는 설화는 대표적인 것이다.

지렁이를 먹으면 왕성한 정력으로 다산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민간요법인 토룡탕이 등장했다.

또 한방에서 해열제로 쓰는 지룡은 지렁이를 말린 것이다.

기우제를 지낼 때 5방위의 토룡에게 제를 지낸 것이나 "비오는 날 지렁이에게 오줌을 누면 고추가 붓는다"는 속신으로 미루어 선인들은 지렁이에게는 영험이 있고 뱀이나 지네처럼 독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것 같다.

지렁이가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 주고 의약품 화장품 원료로 쓰이는가 하면 배설물은 비료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달아 지렁이 사육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한경 3월21일자 47면).

멀지않아 지렁이를 활용한 음식물쓰레기 처리기술 수출로 외화까지 벌어들일 모양이다.

하기야 지난 96년 음식물찌꺼기를 퇴비로 만들어주는 "지렁이상자"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어찌됐든 지렁이사육이 우리실정에 맞는 경제적 친환경적 음식물쓰레기 퇴치방법이라면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생태계 교란을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