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 KAIST 교수 / 테크노경영대학원 >

이달 들어 국제 원유가격이 평균 24%나 올랐다.

잊혀져 가던 "고유가 시대"를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 22일 이라크가 원유수출 중단을 발표하자 세계 및 국내 경제에 초비상
이 걸렸다.

새천년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에너지 문제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물론 과거와는 달리 수급상의 문제는 아니고 가격의 문제이다.

또한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의 감산 합의가 배럴당 30달러를
넘어서도 계속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더라도 일단 앞으로 상당기간 "고유가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름값이 오르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들여다 쓰는 나라가 아닌가.

또한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
아픔은 더욱 클 것이다.

특히 경기활성화로 인플레 압력이 예상되고 있는 현 경제 상황하에서 유가
급등은 정말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이러한 불청객이 올 경우 우선 급한대로 피해보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즉 <>비축유를 방출한다든지 <>가격안정기금을 동원한다든지 <>차량운행
10부제 실시 <>네온사인 사용중지 <>서울역앞 절약캠페인 등의 임시방편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다가 한숨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망각의 뒤안길로 안주해 버리게
마련이다.

한국은 산유국이 기침을 하면 감기로 앓아 누워버리는 체질이 된 것 아닌가.

이는 체질개선을 위한 근본대책을 이루지 못하고 단기처방에 의존했기 때문
이다.

지난 70~80년대에 두차례의 석유위기를 겪었다.

그러다 90년대에 국제 석유시장이 안정되면서 한국은 에너지 문제에 대해
관심마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에너지수요 탄성치가 1.2수준에 와 있다는
것이다.

즉 국내총생산(GDP)이 1% 증가하면 에너지 사용은 1.2% 증가한다는 뜻이다.

기후변화협약상의 이산화탄소(CO2) 감축 의무이행 압력하에서도 에너지
소비가 아직도 GDP 증가를 앞서고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산업체나 가정에서 에너지를 "값비싼" 상품으로 보지 않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아니 그동안 물가관리 차원 또는 산업체의 수출경쟁력 유지라는 이름하에
에너지 가격을 관리해 왔던 정책관행이 문제였다고 하겠다.

생산원가를 밑도는 값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사례도 있었다.

과거 어느 축산농가에서는 난방용 에너지로 기름 대신 전기를 쓰기도 했다.

농촌용 전기라고 해서 값이 엄청나게 쌌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제는 더 이상 에너지절약을 호소하고, 강제성을 띤 단기 처방만
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 근본적인 에너지 가격체제로 개편할 것을 강하게 들고 나오고 있다.

물론 가격현실화는 당장 가정과 기업체들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괴로운
일이다.

그러기에 항상 단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겠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겠다.

지금의 에너지 소비증가 수준은 코앞에 다가와 있는 기후변화협약 의무
요구에서 절대 수용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고유가사태가 한편 우리에게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다른 한편
그동안 알면서도 추진하지 못했던 에너지 가격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로
서 승화시킬 땐 오히려 반가운 손님일 수도 있다.

물론 고유가 상황은 단기적으로 종료될 수도 있고 6개월 정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계기로 체질을 바꾸는 용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멀지않은 장래에 온몸의 대수술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특히 다가오는 기후변화협약의 의무압력하에서는 그러하다.

최근 과감하게 추진되고 있는 전력과 가스산업의 분할 및 매각에 있어서
경제적 효율성은 물론 한국의 높은 해외의존도를 따져야 한다.

고유가시대를 다시 맞으며 인식해야 할 일인 것이다.

또한 최근 기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절약을 국가에 약속하는 자발적
협약(Voluntary Agreement) 사업이나 다른 기업의 에너지절약 투자를 해주고
이윤을 회수하는 ESCO(Energy Service Company :에너지절약전문기업)사업들은
고유가 시대에 효과가 더욱 큰 사업이라 하겠다.

실적확대 차원에서 물리적으로 업체 참여를 늘리려 하기보다는 참여한
기업들이 실질적인 동기부여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

또 참여기업들이 실질적인 에너지 절감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시설투자를 하면 투자분보다 더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bhahn@kgsm.kaist.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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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공대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시스템공학 박사
<>기후변화협약 한국대표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