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년 국내 제약사의 기념비적 사건"
SK케미칼 김대기 상무가 개발해낸 국내 신약 1호 항암제 "선플라"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만큼 그의 신약개발은 국내 제약사에 하나의 큰 획을 긋고 있다.
한국 과학수준으로 볼때 신약개발은 매우 늦은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이미 70년에 신약을 개발해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이 난립해 있는 국내 제약산업 여건에서 신약개발은
"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 상무의 신약개발이 "사건"으로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신약이 탄생하려면 최소한 10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비용도 수천억원대가 요구된다.
실패하면 이 돈은 허공으로 날아간다.
성공하면 단번에 명예와 부가 보장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또 약 설계사, 유기화학자, 약리학자, 수의학자,
임상학자 등의 호흡이 맞아야한다.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뒤처지는 분야가 있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더라도 인간에게 실제로 쓰이는 약물로
상품화되는 것은 겨우 수천분의 1의 확률을 넘지 못한다.
김 상무는 이러한 어려움을 모두 극복, 한국 신약 1호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다.
그는 "항암제 연구회"를 조직해 산.학.연이 함께 선플라 연구에 매달렸다.
그가 근무하는 SK케미칼 생명과학연구실 인력은 10여명에 불과했지만 함께
신약개발에 참여한 외부인력은 서울대 김노경 교수 등 모두 70여명에 이른다.
"선플라"는 흔히 제3세대 백금착체 항암제로 불린다.
백금착체란 말이 붙는 이유는 분자구조의 중심에 있는 백금(Pt) 원자가
암세포의 DNA복제를 방해해 암세포 증식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76년에 개발된 제1세대 시스플라틴(cisplatin)은 항암효과는 탁월하지만
독성이 너무 강해 부작용도 심했다.
86년에 나온 제2세대 항암제인 카보플라틴(carboplatin)은 독성은 줄였으나
항암효과가 낮고 적용범위도 너무 좁았다.
이에반해 선플라는 항암효과도 뛰어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한 약이다.
가격도 1개월 투여량을 기준했을 때 최근에 나온 택솔과 옥살리플라틴이
2백만원~3백만원이나 하는데 비해 선플라는 60만원 수준으로 훨씬 싸다.
SK케미칼은 선플라가 앞으로 연간 5천억원의 정도의 매출을 올려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유럽의 한 제약회사가 일본에서 선플라를 이용, 임상실험을 하겠다며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곧 수출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선플라는 미국 영국 등 20여개국에 특허가 출원돼 있다.
선플라의 개발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무엇보다 국내 신약개발의 물꼬를
열었다는 점이다.
후발업체들에 "우리도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투자분위기를
조성해 신약개발의 가능성을 높여준 것이다.
김 상무는 "우리가 일본에 비해 신약개발이 29년이나 뒤졌지만 일단
신약개발에 성공한 이상 그 격차는 급속히 좁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상무는 지난 77년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항바이러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그의 관심 영역은 언제나 항암과 항바이러스 분야였다.
선플라와 B형간염치료제인 "SK1899"를 개발한 것도 그가 이 분야에서
축적해온 기술로 만들어낸 성과다.
그는 최근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와 생약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는 이미 물질을 찾아내 외국에서 임상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비아그라 보다 훨씬 효과좋고 부작용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관절염 치료제도 2단계 임상실험이 끝나 내년이면 상품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 상무의 가장 큰 꿈은 독감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것.
감기는 바이러스 종류가 너무 많아 백신으로 치료할수 없다.
그러나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가능하다.
외국에서는 이미 상품화가 된 것도 있다.
김 상무는 "감기치료약 만큼 시장이 넓은 상품은 없다"며 "독감바이러스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신약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한다.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