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엽 < 전남대 교수 / 경제학 >

삼성이 자동차 사업 허가를 받을 때를 돌아보자.

한편에서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공급과잉과 대기업 그룹의 시장지배력 확산을
우려한 반대의견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내 자동차시장의 경쟁 환경 개선과 자율적인 기업활동의
보호를 위해 허용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당시 정부로서는 기술도입신고서의 접수 여부만을 결정할수 있었다.

그것이 통상산업부 해당 과장의 전결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찬성론자나
반대론자들 모두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자동차산업의 중복 과잉투자를 우려해 내려진 진입불가 방침은 세계화
시대의 경쟁논리와 지역민원의 요구를 근거로 한 최고결정권자의 선택으로
7개월만에 번복됐다.

신생기업인 삼성자동차는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스스로 서지 못하고 빅딜
대상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행태는 어떠했는가.

자율적이라고 하는 기업간 빅딜 협상중에 정부는 삼성자동차의 부실에
책임이 큰 삼성그룹 총수가 부채청산을 위해 개인 재산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7개월여만에 무산된 빅딜 협상을 법정관리 신청으로 마무리하면서 삼성은
정부의 요구에 화답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룹총수 소유의 삼성생명주식 4백만주를 채권은행에 신탁한 것이다.

이것은 법정관리 신청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종의 덤이었다.

그런데 신탁한 삼성생명주식의 현금가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자, 채권은행이 아닌 주무장관이 직접 평가부족분을 삼성이 추가로
내야 한다고 했다.

또 법정관리가 신청된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의 가동여부와 사후 구체적
처리방안에 대해 법원이나 채권자가 아닌 관련 장관과 청와대의 고위
당국자들이 앞다투어 의견을 냈다.

이런 정부 당국자들의 의견 자체의 잘잘못도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더 큰
문제는 그것들의 위상이다.

이들 가운데는 정책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법령에 의한 행정활동이라고
하기도 곤란한 것들이 많다.

이해 관련 기업의 직원이 했으면 적절할 말을 장관이 한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입 이후 적어도 5년이 흘렀다.

그간에 정권도 바뀌었고, 사람도 바뀌었고, 정권이 기반으로 하는 지역도
달라졌다.

그런데도 바뀌지 않은 것은 사업을 기업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장관이 하고
각종 정서를 배경으로 정부가 한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돈 빌려준 사람과 회사의 경영자 및 근로자는 뒤편에
앉아있고, 이해관계를 가려야 할 법원도 없는 것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국민의 정부는 초기에 시장경제와 책임경영을 목표로 경제구조를 개혁할
것을 천명했다.

이 정책목표가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우리 경제의 총체적 위기가 근본적으로
는 개발연대의 경제운용방식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 인식과 그에 대한
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책임보다는 정부의 시정목표가 우선하고 논리보다는 정책당국자의
의견과 선호가 더 중시되는 개발연대의 경제운용방식이 달라진 국제경제환경
과 국내 경제주체들의 행동패턴에서는 더 이상 효과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중요한 정책적 의사결정에 직면해서 보인 정부 당국자의 행동양식은 개발
연대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주식회사"의 전성기에 현재의 정부 당국자들이 중견간부로서
능력을 발휘했고 경력을 쌓아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것이다.

본사가 정부이고 각 기업은 사업체였을 때의 행동양식을 정부당국자는
물론이고 기업총수도 사법기관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새 부대에 헌 술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와 책임경영이라고 하는 국민의 정부의 정책목표가 전과 같이
빛바랜 용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자신의 영역을 정책
사항에 한정하는 절제와 정책사항의 엄정한 집행으로부터 오는 위엄과
명예에 만족하는 것을 익혀야 한다.

생명보험회사의 상장여부와 방식의 선택, 파급효과가 큰 기업의 파산에 따른
지역경제의 혼란과 어려움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예산
확보, 책임경영의 내용과 한계를 규정한 법령 정비 등은 정부가 해야 할
정책사항이다.

부실 부채의 청산 방법이나 절차, 공장 가동 여부나 부채 부담 액수 등은
정부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다.

더 바란다면 새 부대에 적합한 새 술을 찾아내야 할 일이다.

< yysohn@ chonnam.chonnam.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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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퍼듀대 경제학박사
<>저서:지역경제와 지역산업구조의 개편방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