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시대의 산물이자 사회의 거울이다.

40대이상과 30대 20대가 같은 노래를 공유하기 힘든 건 살아온 시절이
다르기 때문이다.

50년대를 견뎌낸 세대에게 "굳세어라 금순아"는 단순한 유행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번쯤 돌아보겠지"하며 뒤를 따라가던 이들은 즉석에서 생각을 털어놓는
20대의 랩과 하드코어(강렬하고 빠르고 직설적인 가사를 담은 곡)를 도저히
따라 부를 수 없다.

지난 3월 조PD 음반에 이어 김진표의 "추락"(김진표 작사 손성원 작곡)이
다시 청소년 유해매체물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은 걱정스러움을 넘어 슬프다.

기성세대와 세상비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노골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들이 트렌드상품화되는 아픈 현실을 보는 것같아서다.

전체 3절로 이뤄진 "추락"의 가사는 일부를 옮겨 적기조차 민망하다.

술취한 아버지로부터 상습적으로 추행당한 끝에 낳은 아기를 화장실에
버리고 급기야 유흥가에 빠져든채 아버지를 원망한다는 내용은 노래가
아니더라도 차마 입에 담기 어렵다.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요청을 받아 음반의
유해매체물 판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유해음반 판정을 받으면 18세미만 청소년에게 팔수 없다.

또 "청소년 유해" 표시를 하고 레코드점에서 일반음반과 분리해 진열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3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그러나 조PD사건 당시 PC통신에서 실시한 사이버투표 결과 "유해매체물 지정
등의 규제가 청소년을 보호할 수 없다"는 대답이 69%나 나온데서 알수 있듯이
이같은 규제는 자칫 실효없이 해당음반을 홍보해주는 역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

순수문화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창조자들에게도 자유와 낯설고 이질적인 것에
대한 긍정심과 미래의 것에 대한 비판적 개방성이 요구된다.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현대 대중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뜩이나 탈출구 없는 상황에서 음악에 의존하는 청소년들에게 말초
감각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일관된 가요를 내놓는 것은 아무래도 반항과
저항이라는 젊은세대의 특성을 상업화의 도구로 이용한 행위라는 느낌이
짙다.

음반제작자들의 건전한 상식과 양식이 아쉽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