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국회에서 통과된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에 따라 국책연구기관 이사회가 총리실 소속의 5개 연합이사회로
통폐합 개편되고 민간인 이사들이 임명됨으로써 앞으로 국책연구기관의 운영
시스템이 크게 바뀌게 됐다. 이제부터는 사업검토와 예산승인 및 장기발전
방향 등과 관련된 주요사항은 통합이사회에서 심의하고 결정하게 된다.

바뀌는 것은 이사회뿐만이 아니다. 원장책임아래 자율적인 인사 예산 조직
운영이 보장되는 대신 경영평가를 받아야 하며 일부 연구용역은 공개경쟁을
거쳐 발주하게 된다. 정부가 관변연구소 운영의 틀을 이처럼 크게 바꾸게 된
까닭은 간단하다. 행정부처마다 1~3개씩의 산하연구소들을 두고 막대한 정부
예산을 쓰면서도 이렇다할 연구성과를 내놓지 못했고 관할 행정부처의 들러리
역할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런 양상은 인문사회계통뿐 아니라 이공계통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이공
계통 국책연구기관 및 국.공립대 산업기술연구소 대부분이 특허나 실용신안
등록건수가 극히 적거나 아예 없다는 특허청 발표만 봐도 그러하다. 이같이
연구실적이 부진한 까닭은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형식주의, 극도로 제한된
연구자율성, 불안정한 직장안정성 등에 원인이 있다.

최근 정신문화연구원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정원외 운영, 무단결근,
나눠먹기식 예산운영 등 국책연구소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소관부처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발표되지도 못하고, 그래서 현실을 왜곡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했다는 점이다.
국책경제연구소중 단 한곳도 국가경제를 파탄지경으로 몰아넣은 외환위기를
제때 경고하지 못한 까닭도 이런 연구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새로운 체제에서 과거의 문제들이 과연 일소될 수
있겠느냐는 점인데, 이사회가 총리실 산하로 갔다해서 20~50%에 달하는 정책
연구예산을 집행하는 과거 소관부처의 눈치를 보지않아도 될지는 여전히 의문
이다. 연구용역을 공개경쟁에 부친다는 것도 과연 객관성이 얼마나 보장될
수 있을지 두고 봐야할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구소들을 단기실적에 급급
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 기초자료 수집이나 데이터 축적 등 연구기반을 다지는
일을 소홀히 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경제 인문 기초기술 산업기술 공공기술 등 5개분야 43개 연구기관들이 쓰는
올해 총예산은 1조4백68억원이나 된다. 하지만 이들 국책연구기관이 우리경제
의 기술개발 및 경제정책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할 때 국책연구기관
운영개선은 단순히 효율적인 예산지출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다. 이번 체제
개편을 계기로 국책연구기관이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도록 하려면 해결
해야할 과제가 적지않다는 점을 관계당국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