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다소 흥분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4백억달러 무역흑자가 눈앞에 다가오고 체감경기가 편하다고 할 정도로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3저로 지칭되는 금리 유가 환율이 아주 유리하게 작용하자 마치
우리 경제가 곧 IMF체제를 벗어나는게 아니냐는 성급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분위기를 경기회복의 호기로 활용하려는 듯 정부는 연일 숨돌릴 틈
없이 메가톤급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동산경기 부양정책이 핵을 이루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에 따른 토지거래허가제 폐지, 양도소득세의 비과세 대상
기간 축소, 미분양아파트 해소를 위한 중도금대출의 확대 등이 바로 그것
이다.

정부나 여당의 정책담당자들은 부동산경기를 부추기는 길만이 실물경제를
되살리고 실업자를 흡수하는 첩경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런 인위적인 정책들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지는 한번쯤 짚어봐야 한다.

불과 몇년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을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상황이 김대통령 취임초기와 비슷해서이다.

우리경제는 88년 올림픽을 치루면서 거품이 최고조에 올랐다.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주가전광판은 빨강색 일색이었다.

소위 투기경제의 전형을 보였다.

이로 인해 경제의 체온계랄 수 있는 국제수지가 급속히 악화되면서 1백억
달러에 이르던 무역흑자는 적자로 반전됐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긴축정책을 쓰면서 무역흑자로 돌리려 했으나 역부족
이었다.

그런데 김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사단이 벌어졌다.

"신경제 1백일"이라는 경기부양책을 쓴 것이다.

외부변수인 엔고등의 3저현상으로 한국경제가 호전되는 것을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장려하고 1인당 외화소비한도를 대폭 늘렸다.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만끽토록 했다.

김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경제계획"이라는 고도성장정책을 세웠다.

급기야 96년에는 무려 2백6억달러의 적자를 냈다.

IMF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일련의 잘못된 정책들은 결국 모든 국민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으로
돌아왔다.

현재의 우리 사정이 그때와 흡사한 데가 많아 이상할 정도다.

일단 3저가 찾아왔다는 것이고 의도적인 부양책 등이 그렇다.

올해 대규모 흑자가 나는 것이 어찌 우리 경제가 좋아져서인가.

전에 없는 불황으로 기업투자가 줄고 소비가 극도로 위축돼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이를 경기회복의 신호라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될 일이다.

최근 경기부양의 핵으로 회자되는 부동산정책만 해도 그렇다.

이런 정책들이 한때의 반짝경기를 유도할 수는 있다.

잠겨있는 돈을 부동산 쪽으로 끌어들여 유통시키자는 발상이 결코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이것이 근본적인 수단이 아니라는데에 문제가 있다.

집값은 싸야하고 토지가격 역시 적정한 선을 유지해야 한다.

부동산시장을 완전 자유화하고 외국인 투자를 개방했지만 아직도 그들이
망설이는 이유를 잘 살펴봐야 한다.

생산코스트를 결정짓는 토지나 건물임대료가 아직 높다는게 외국투자자들의
판단이다.

정부의 의욕적인 부동산정책이 자칫 부동산투기로 연결돼 또 다시 거품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돈은 푸는 것도 그렇다.

이 돈은 철저하게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에 쓰여져야 한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금융부실을 막는데 집중돼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주택자금확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후방 파급효과가 큰 건설경기에 당국자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좀 더 사려깊은 정책이 아쉽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정부는 정제안정화를 꾀하고 개혁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두가지 힘겨운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개혁은 경제안정화가 선행될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경제안정화는 어디서 오는가.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 지름길은 생산원가인 임금 금리 지가를 낮추는 것이다.

다행히 근로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임금은 안정되고 천정부지로 치솟던
금리도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지가만 요동치지 않는다면 우리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동산정책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박영배 < 사회2부장 youngba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