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린 < 한양대 교수 >

필자가 아마르티아 센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그의 빈곤
론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였다.

옥스퍼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것으로 소문난 그의 강의는 그날도 대형 강의
실이 좁을 만큼 많은 학생들로 차 있었다.

그의 강의는 열정적이고 철학적이었다.

그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학생들에게 철학적 문제를 던졌다.

그리고 그것을 경제적인 개념과 결부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강의는 대체로 어려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강의가 끝날 때마다 무언가
새롭고 중요한 것을 얻은 기분으로 충만했다.

그는 항상 경제학과 철학을 결합해 중요한 경제적 문제들을 윤리적 차원
으로 끌어 올렸다.

센 교수의 일생을 통한 관심사는 가난한 인도 출신답게 빈곤 및 기아의
원인과 해결에 있었다.

따라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포함한 초기 논문은 경제발전론과 저개발국가
에서의 빈곤의 측정 및 실업, 그리고 투자 기준에 관한 것이었다.

이같은 주제는 그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분배문제로 발전시켰고 결국엔 후생
경제학(welfare economics)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번 노벨상 수상 이유도 기본적으로 후생경제학에 대한 그의 기여에 있다.

특히 사회적 선택(social choice)에 대한 그의 오랜 연구와 기여는 후생
경제학을 한차원 높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사회적 선택이란 경제정책이나 경제상태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집합화하는 문제를 다루는 경제이론이다.

정부가 다양한 경제정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선 모든 사회구성원들
이 원하는 정책을 선택해야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각기 다른 정책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개개인들의 선호를 모두 고려해 사회전체적 차원에서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준칙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일찍이 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애로(Arrow)는 그의 "불가능성 정리"
에서 그러한 준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센 교수는 개개인의 효용에 대한 정보와 개인간의 효용 비교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 사회선택에 대한 논의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또 센지수(Sen Index)라는 빈곤의 척도를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센지수는 기존의 빈곤지수들의 약점을 보완한 가장 합리적이고 일반적인
빈곤지수인데 센의 후생경제학에 대한 깊은 관심이 이러한 새로운 지수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철학자이고 그 다음에 경제학자이다.

만약에 경제학이 단순히 기술적 학문으로 남지 않고 철학적 학문으로 대우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센과 같은 독창적인 사상가(original thinker)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