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정도 전의 일이 됐지만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다.

마침 일본에서는 "경박단소"라는 말이 화제가 됐었기 때문에 널리 읽혔지만
읽어보면 일본인은 왜 축소지향인가 하는 것에 대한 실증적 뒷받침이 돼있지
않다.

그 이유는 일본문화를 축소라는 전제에서 파악하고 그에 맞춘 사례를
열거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일본의 기술과 관련해 유사한 지적을 한 사람들이 그외에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유형원과 박제가 등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은 일본사회에 물건만들기의 기본인 "표준"이란
개념과 "규격"이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축소지향이므로 일본이 경박단소에 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표준과 규격의
존재가 일본의 기술을 정교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때문에 실학자들은 그러한 것을 인식할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무엇 무엇이다"라는 연역적발상이 아니라 "그것이 왜 그럴까"하는
귀납적방식으로 현실을 볼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귀납적 시각은 오늘날의 한국에는 필수적이다.

확실히 현재의 한국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외자도입이 즉효약이라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외자유입은 쉽지 않다.

아무리 외자도입이 필요하다고 외쳐대도 외자도입의 소프트만들기가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불경기 때는 먹는 장사가 최고라고 할 정도로 식당이 난립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외자가 필요하다고 외쳐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맛이라는 소프트가 무시되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귀중한 체험을 한적이 있다.

대전에서 대둔산으로 가는 도중 "산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에서 맛있는 된장찌게를 먹은 적이 있다.

듣자니 그곳의 여주인은 20년 가까이 반찬가게를 운영했으며 그동안 맛의
연구를 한후 이제는 그것을 요리로 만들어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싶어
개업했다는 것이다.

이 여주인은 불경기이므로 식당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평소부터 맛을
소중하게 여겨 그때문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국이 사는 길은 여기에 있다.

시모조 마사오 < 인천대 객원교수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