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력 ]

<> 41년 전남 장성 출생
<> 광주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8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 대한교육보험 부사장
<> 92년 제14대 국회의원(민주당 전남 담양 장성) 국회재무위원
<> 93년 민주당 사무부총장
<> 국민회의 금융특별위원회 위원장
<>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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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영 장관은 주로 정통관료나 경제학자들로 채워진 현 정부의 경제팀에선
이질적이다.

국회의원을 거친 당료출신인데다 경력도 특이하다.

은행원으로 출발,보험회사 부사장까지 지낸후 야당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지난 86년 한 기업인 모임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 도피중이던 권노갑 전의원을 숨겨준 일과 박지원
현 청와대 공보수석과의 두터분 교분이 그가 DJ맨으로 변신하는데 결정적
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92년 금벳지를 달면서 "경제통"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대한교육보험에서 닦은 금융과 실물경제지식이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교육보험 시절 그는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국내 처음으로 개발, 회사자산을
1년에 3백20억원씩 늘려나가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과장으로 입사한지 불과 2년만에 이사로 승진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국회 재경위에서 김원길 장재식 의원 등과 더불어
관료들과 토론을 벌일 수 있는 몇 안되는 야당의원으로 활약했다.

의욕적인 의정활동에도 불구하고 96년 15대 총선에선 당내 공천에서 탈락
했고 광주보궐선거 공천에서도 물을 먹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백의종군했다.

그런 그를 눈여겨 봐온 김 대통령은 공개석상에서 "변치 않는 의리"에 대해
칭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박 장관이 입각하자 한동안 정가에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 사귀는 폭이 넓고 다양하기로도 정평이 나 있다.

김태동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과 이진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과는 대학교수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와는 돈독한 사제지간이다.

변 교수는 박 장관의 의원시절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 장관은 지난 3월 취임한 이후 바쁠 땐 사무실에서 우거지국으로 점심을
때울 정도로 열심이다.

IMF를 돌파하는 "투톱"인 수출증대와 외국인투자유치의 사령탑을 맡은데다
기업구조조정까지 성사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금융중심으로 기울게 마련인 정부 경제팀에서 실물쪽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최근엔 재경부 한국은행과 논란을 거듭한 끝에 무역금융에 버금가는 무역
어음 활성화 조치를 이끌어냈다.

그는 "취임 6개월이 지나면 소신있게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한다.

< 이동우 기자 lee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