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 몸담은지 25년째입니다만 올해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하루하루
가 악전고투의 연속입니다"(지방 S백화점 K사장)

"작년에는 물건 빨리 달라는 독촉전화에 여름내내 시달렸는데 요즘은
영 딴판입니다. 중학교매점에서 하루 50상자도 더 팔리던 인기빙과가 올해는
10상자도 안나가요"(H빙과업체 K이사)

"영양제는 아예 찾지도 않아요. 감기약, 소화제같은 꼭 필요한 약이 아니면
사람들이 약국도 오지 않는 것 같아요"(K약국 L약사)

한국은행이 최근 1.4분기 가계소비의 원인과 특징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예상했던대로 개인소비지출이 크게 줄었다.

외환위기후 소득이 급감하고 물가, 금리는 껑충 뛰었으니 소비를 줄이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있을리 없다.

당연한 경제현상이다.

그러나 보고서내용중 눈길을 끄는 대목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소비의 감소세(-8.8%)가 소득감소속도(2.8%)를 크게 앞지른 것이요,
또 하나는 소득이 줄어든 가운데서도 저축증가율이 9.5%에 달한 점이다.

이 두가지 현상은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소비감소세가 소득감소세를 앞질렀다는 것은 소비심리가 급격히 위축돼
지갑을 꽁꽁 닫고 살려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소득이 줄었는데도 저축을 늘렸다는 사실에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려는
불안심리마저 엿보인다.

두가지 현상은 결국 IMF 터널안에 들어선후 우리사회에 나타난 소비활동의
특징을 한마디로 압축해 준다.

한국경제는 이제"소비빙하기"에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한여름철인 지금도 소비빙하기의 흔적은 곳곳에 널려 있다.

백화점들이 아무리 초염가세일을 외쳐대도 매출은 작년보다 30% 가까이
추락했다.

제철을 만난 맥주, 청량음료도 극도의 판매부진으로 속이 타긴 마찬가지다.

고속버스는 바캉스특수가 사라지고 승객이 5명도 채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민들이 먹는 것마저 아껴 정육점에서는 돼지고기도 판매가 줄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과소비가 우리사회의 대표적 병리현상중 하나로 지목
됐던 것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소비부진이 몰고올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지나친 소비감소는 필연적으로 생산활동을 위축시킨다.

생산감소는 고용축소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가계소득과 소비를 토막낼수
밖에 없다.

저축을 늘릴래야 늘릴수 없는"저축의 역설"에 부닥치게 된다.

실물경제가 자칫 파탄에 빠질수도 있다는 얘기다.

부자나라이면서도 구조적모순의 경제금융시스템으로 세계의 걱정거리가 된
일본의 뼈아픈 경험은 우리에게 교훈이 될수 있다.

서방선진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일본경제의 병인중 하나로 지나친 저축과
그로 인한 내수위축을 꼽고 있다.

미국 스탠포드대학의 마이클 보스킨교수는 "자동차가 빨리 달리려면
타이어(저축)와 엔진(소비)이 모두 좋아야 하는데 일본은 타이어에만 촛점을
맞춰 놓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근착 뉴스위크지는 일본이 내수활성화의 타이밍을 놓친채 장기불황의
늪에서 허덕이다 90년대의 10년을 잃어버렸다고 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소비는 그동안 GDP성장에 52.6%를 기여해 왔다.

건전한 소비는 건강한 경제를 떠받쳐 준다.

때마침 정부는 경기부양책으로 공공기금을 포함, 8조원을 새로 지출한다고
이달초 발표했다.

과소비는 배격돼야 마땅하지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건전한 소비마저
위축돼서는 안될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