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

자동차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고 아우성이다.

엊그제 l당 8백원대이던 휘발유 가격이 1천원을 훨씬 넘어섰으니 더이상
차를 운행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요즘 부쩍 주변에서 고유가를 석유업계 탓으로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하는데 정유업계로서는 무척 곤혹스런 입장이다.

30여년의 가격통제로 "기름값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소비자의
고정관념을 탓할 수 만은 없다.

지금의 외환위기로 인하여 정유업계가 제일 큰 피해자라는 사실을 옳게
이해시키지 못한 업계의 홍보 부족을 자성하지 않을 수 없다.

석유제품의 원가구성은 일반 공산품과는 달리 원재료비 즉 원유 관련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이르며, 10%중 절반은 정부에 납부하는 관세
및 부과금이다.

나머지 5%가 제조 관리 유통비용등 정유사의 경영비용이 된다.

그나마 감가상각비등 경직성 비용을 제외하면 정유사가 통제할수 있는
몫은 총원가의 2%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대강의 원가 구성비율을 보면 전체의 90%가 달러로 지급되는
비용이며, 따라서 외환시세가 석유제품 가격 결정에 직결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제품이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생활필수품이자 국가의 주요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석유제품의 가격은
이러한 변동요인을 전부 반영하지도 못하고 제때에 조정되지도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고유가로 인해 석유제품의 소비감소 폭은 점차 커지고 있으며
수요처의 경영악화로 외상매출금의 회수는 점점 어려워지는 반면
원유공급선의 대금결제조건은 날이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

일부 어려운 정유사의 경우는 신용장 개설마저 거부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록 비용 절감노력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지만 정유업계는
어느업계 못지않게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업계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민과 국가를 위해 마땅히
완수해야 할 에너지원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함이다.

과거 두차례에 걸친 세계적인 유류파동과 걸프사태 등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다해왔듯이 지금의 위기 또한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