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소득 1만달러였던 우리가 며칠새 6천 혹은 5천달러로 감봉당했다.

단 열흘만에 일어난 일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통계수치를 볼 능력만 있다면 수년전부터 오늘의
붕괴를 예견할수 있었다.

1천억달러가 넘는 외채에 1백억,2백억달러를 초과하는 무역수지 적자가
여러해 거듭되는데 나라살림이 온전할 수는 없다.

권력자 측근의 전화 한통으로 수천억원을 선뜻 내주어온 그간의 은행
관행이나 연구개발보다 부동산투자에,그리고 은행돈에 의존하여 사업을
키워온 큰 기업체들의 행태로도 오늘의 비극은 예견할 수 있었다.

결국 파국이 왔고 체면따위 생각할 겨를없이 외화 빚을 얻어야할
지경에 이르렀다.

사상 처음 1백10억달러의 무역수지흑자를 냈던 1988년을 고비로 3년
뒤에는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해외에서 번 돈은 인플레를 막기위해 해외에서 써야 한다는 당시
경제관료들의 건의에 따른 결과였다.

무식 무지, 그리고 무능한 관료들의 말을 믿고 부자가 된 것처럼 착각한
국민들은 애써 벌어온 돈을 해외 관광에, 양주나 사치스런 가구 구입에,
그리고 해외부동산투자 등 돈 쓰임새가 헤퍼졌고 끝내는 빈 바가지만 남겼다.

특히 아시아의 용이니, 혹은 성공한 개발도상국이니 하며 OECD에
가입하고, 선진국이 된것처럼 온 세계를 큰소리치고 다니던 우리가 하루
아침에 쪽박들고 돈꾸러 다니는 신세가 됐으니 어찌 그들의 눈에 희극으로
비쳐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간 국제화니 세계화니 하여 외쳐 오긴 했으나 관료들의 굳어진 의식은
그대로였다.

외국의 전문기관이나 많은 전문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경제파탄을 예견하고
충고해 왔는데도 세푼짜리 지식만을 믿고 이에 대처하지 않은 관료들의
옹고집이 결국 우리 온 국민들을 희극배우로 전락시킨 것이다.

참말로 분하다.

"오 IMF여, 우리의 이 비참한 코미디의 막을 하루 빨리 내릴수 있도록
도와달라"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영락없는 후진국 사람이다.

또 이기고 보자는 당자들의 죽고살기식 저질 코미디를 되풀이하게 된다.

이번 대선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주자나 그들 참모들의 대부분은 최고 학부출신의 지성인이라 그간의
경력 또한 화려하다.

그러나 그들은 지성과는 거리가 먼 코미디의 주역과 조역이 된다.

정치계에 입문한지 채 한달도 안된 한 정치초년생이 당의 일족권속을
거느리고 정치 7단이니 8단이니 하는 다선 거물의원들이 수두룩한 제1당에
입성하였고, 드디어 그들을 거느리는 당 총재가 됐다.

선거가 급해서라 하나 코미디가 아닌 이상 우리처럼 정치 문외한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지난 30년을 으르렁대며 앙숙관계이던 양극의 두 정당이 단일후보를 냈다.

또 늘 반대편에 섰던 한 노정객이 그 후보의 당선을 위해서 캠프에
합류했다.

대권이 무엇이기에 어제의 적들이 한 편이 될수 있는가.

우연히도 세사람 나이가 70을 넘은 탓에 그들의 나이와 건강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대중을 상대로 한 유세대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내 보여야
하므로 할아버지 후보는 되도록 젊고 건강하게 보이도록 꾸며진다.

화장하고 머리손질하고 넥타이를 고르고 옷색깔이나 표정에 신경쓴다.

건강하다면야 나이가 문제될 것 없겠지만 나이를 속일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통념이니 어쩔 것인가.

있는 그대로라야 하나 참모들의 권유를 따르다 보니 코미디의 주역처럼
된다.

한 후보는 당을 급조하여 후보가 된 후 그동안 몸담아왔던 친정 당을
줄기차게 매도했다.

만일 그 당 경선에서 1등이었다면 대선과정에서 어떤 말을 하고
다녔을까가 몹시 궁금해진다.

급조한 당의 주요 구성원들은 한때 국정을 망쳐놓은 당이라고 소리높여
매질하고 있는 그 당의 중진들이었고 또 경제망친 정부라고 매도하지만
그 정부의 경제관료로 또는 경제에 관하여 곁에서 국가원수를 보좌하던
사람들이 아니던가.

엊그제까지 이 후보라야 한다고 유세다녔던 한 중견정치인은 깜짝할 사이
당을 바꾸어 이번에는 반대편 후보라야 한다고 열을 올렸다.

이념이고 정책이고 가릴 것 없이 여기 붙고 저기 붙고 하는 것은
보기 역겨운 저질 코미디다.

정치는 예술이라 하나 우리의 정치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경제가 거덜나서 나라가 침몰 직전인데,그래서 당장 내일을 내다보기
어려워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줄 정책제시가 아니라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 올리고 있다.

선거막판에 이르러 그 도는 더욱 심해져서 진정 저질의 극에 이른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정책대신 오로지 나이가, 건강이, 병역문제가 그리고 지난날의 경력들이
시비거리로 될수 밖에 없었다면 차라리 세 후보가 가위 바위 보로 결단내는
것이 돈 안들어 좋고 역겨운 코미디를 보지 않아서 국민들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멋과 해학이 넘쳐 흐르는 잔치속에서 대통령을 뽑을 날은 언제쯤이나
올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