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자동차시장의 대접전이 시작됐다.

토박이 유럽차와 일본차의 격돌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후발주자 한국
업체들의 도전도 만만찮다.

하나같이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는 현지화 전략으로 회사의 장래를 건
승부를 가릴 태세다.

미국은 아직 관망중이다.

최근 일본이 먼저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일본 최대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는 프랑스 북부 랑스지역에 16억달러를
투자해 완성차공장을 건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요타는 신규투자를 통해 오는 2000년에는 유럽내 판매대수를 현재보다
50% 증가한 60만대로 끌어올릴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그동안 영국내 투자에 포커스를 맞춰온 도요타의 다음
타깃은 서유럽보다는 차세대주자로 떠오르는 동유럽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 왔다.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서유럽시장은 이미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도요타가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신지 사카이 도요타 유럽담당 상무는 "아시아 미국시장에서와는 달리
유럽고객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모델개발에는 소홀한게 사실"이라고 고백
한다.

싼 임금의 동유럽보다는 기술과 디자인이 뛰어난 자동차 본고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한마디로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격"이다.

도요타의 대유럽투자로는 최대규모인 이번 프로젝트는 프랑스는 물론
전유럽 자동차메이커들을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도요타뿐만 아니다.

닛산도 지난해 중반부터 판매부진인 스포츠카생산을 중단하는등 유럽사업의
개편작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유럽등 해외사업수익이 대폭 개선됨에 따라 지난해는
5년만에 첫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혼다와 미쓰비시도 생산대수를 대폭 늘리면서 유럽자동차메이커와의
한판싸움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시시각으로 목을 죄어오는 일본업체들의 도전에 유럽자동차메이커의 반격도
만만찮다.

"고급차의 대명사"인 벤츠가 체면을 내던지고 시도한 변신이 그 단적인 예.

벤츠는 제네바모터쇼에서 1천4백~1천7백cc급 엔진을 장착한 "A클래스"를
선보여 유럽을 비롯한 세계소형차시장에 일대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고객요구의 변화에 대한 화답이라곤 하지만 소형차시장에서 일본과 한국
업체들의 독주를 견제한다는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

제네바모터쇼에서 유럽업체의 소형차모델이 많이 눈에 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또 벨기에공장 폐쇄로 촉발된 르노사태를 계기로 유럽자동차메이커들은
고비용-저효율이란 고질병치료에도 적극 나설 태세다.

이 역시 일본과 한국의 공세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경쟁사들에 비해 유럽현지화전략에 한발 뒤늦은 현대 대우등 국내
업체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유럽과 일본업체간의 "고래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적진 깊숙이에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일본업체와는 달리 국내업체는 주로
동유럽진출을 통한 "외곽두드리기"가 주전략이다.

대우는 이미 지난 95년 폴란드 최대 자동차 회사인 FSO를 인수, 공장가동에
들어간 상태다.

대우는 오는 2002년까지 총 11억달러를 투입해 생산대수를 50만대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어 폴란드는 유럽시장공략의 최적지라는게 대우의
설명이다.

현대자동차도 최근 유고 자스타바사와 러시아 가즈사 인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들 동유럽회사를 인수해 유럽진출의 교두보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김수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