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4주년을 맞은 김영삼대통령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한보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처절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4년전 국민적인 기대속에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취임초기 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을 되새기면 더욱 그렇다.

왜 무엇때문에 이 모양이 되었는가.

"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건 문민정부에 대한 드높았던 환호는 어디로
가고 실정에대한 질타만 남게된 까닭은 무엇인가.

김대통령은 모든 것이 자신의 부덕의 결과이고 자신의 책임이라며,
그 어떤 질책과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경하해야할 취임4돌날 이런 말을 한 대통령의 인간적 고뇌를 우리는 우선
가슴아프게 생각하고,표현 하나하나에 절절한 사과가 담겼다고 봐 대통령의
"진정"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 한마디 한마디가 대통령에겐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진실로 고통을 받는 것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전과"라는 대통령의 말을
좀더 뜯어보고,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오늘 이 모양이 됐는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지율이 한자리수로 평가되는 김영삼정부의 현주소는 한보사건에만
그 원인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가 파탄에 직면하고 대북문제등 주요이슈가 있을 때마다 드러나는
현정부의 관리능력부재가 국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킨 결과라고 봐야한다.

2백40억달러에 육박하는 경상적자, 1천억달러를 넘어선 외채, 그런
가운데서도 성장율은 4%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겹친 오늘의
경제현실은 시각에 따라 여러가지 진단이 나올 수 있겠지만, 우리는 정부의
반기업주의적 성향이 큰 요인이라고 본다.

이 정부 출범이 공교롭게도 경기상승국면과 때를 같이했기 때문에
"경제는 잘 돌아가게 마련"이라는 터무니없는 과신이 팽배하면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시각이 잘못되기 시작했고, 이제 기업의욕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 됐다.

종전까지 청와대의 의전적인 행사에 당연히 초청됐던 경제단체장과
대기업총수를 이 정부들어서는 몇해동안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점은
현 정부의 기업인에 대한 시각을 말해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규제완화를 외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구호는
요란했지만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기업환경은 결코 개선되지못한
것도 따지고 보면 맥락이 이어진다.

정책이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이었기 때문에 신뢰성을 잃었다는
점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북식량원조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구속으로 이어진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는 당초 방침을 바군 것이 잘된 일이지만, 어쨋든
정책기조가 왔다갔다한 사레는 한둘이 아니다.

외환관리가 한달새 대폭적인 자유화에서 규제강화로 신뢰하는등
경제분야에서도 방향 자체가 뒤바귄 정책들은 한둘이 아니다.

기조의 혼선에 겹쳐 지나치게 잦았던 인사로 정책집행도 문제가 많았다.

"장관들은 나와 임기를 같이하도록 하겠다"던 김대통령의 취임전 얘기가
빗나간 것은 차치하더라도 재경원등 주요정책부서의 국.과정마저 심한 경우
두달이 길다하고 바뀌었으니 책임있고 안정적인 집행에 문제가 생겼을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와 내각,재경원과 다른 경제부처간으 역학관게도 문제가 많았다.

우선 청와대비서실의 기능이 명확히 정립되지 못한게 문제다.

의당 참모역할에 그쳐야 했음에도 실제로는 집행부서의 역할까지
도맡아하는 성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경제분야에선 그랬다.

뚜렷한 철학도 없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 재경원이라는 공룡같은
부처를 만든 결과이기도 하다.

과거의 경우 통산부등 사업부서는 최종적인 집행부서인 재무부의
거부부반응이 있을 경우 경제기획원에 조정을 요청, 관계부처간 조율이
이루어졌으나 재경원출범으로 집행기능과 조정기능이 한 부처에 귀속되면서
부처간 조정기능 자체가 경제부처내에서는 사실상 없어지는 꼴이 됐다.

사업부처가 일이 있을 때마다 이를 청와대경제비서실로 들고가는 것이
정당화하게됐고, 이는 결국 "관계부처장관협의회"등 공식적인 정책토론의
장을 사실상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

정책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게 될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보사태가 터지자 관계부처장관들이 모두 "나는 모른다"고 나왔던 것은
이런 측면에서도 그 원인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김대통령이 남은 1년동안 경제살리기에 총력을 경주해야할 것으로
본다.

앞으로 있을 개각과 청와대비서진개편 서도 경제회생의 방침이 반영돼야
할것은 물론이다.

현실감없는 반기업적인 관념적인 이상론자들은 현재의 경제현실에 비추어
배제돼야할 것이다.

가장 큰 당면 경제과제인 경상수지적자 해결을 위해서도 기업인들이
신나게 기업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발목을 잡는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

청와대비서진은 축소하고 그 기능도 참모역할로 분명히해 각 부처가 보다
책임있는 행정을 펼수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현안과제인 노동법개정문제도 경제여건을 감안해야할 것은 물론이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일시적 고통이 따르더라도 우리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는 근본적으로 개혁해야한다고 보면 무노무임의
원칙등이 지켜지도록 해야할 것은 당연하다.

경제가 기로에 서있는 만큼 앞으로의 1년은 또 그것은 대통령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결코 부족한 기간도 아니다.

중심을 분명히하고 임기마지막까지 경제회생에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