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 한양대 교수 / 경제학 >

새로운 노동법은 21세기를 불과 몇 년 앞둔 시점에서 국가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대전제하에 구상된 것으로서 향후 우리경제에 큰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의
3주체인 노사정은 물론 국민일반과 언론의 노사관계를 보는 시각과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노조의 힘이 사용자에 비해 약했던 시절에는 이질적인 구성원의 의사를
수집하는 과정이 노조의 리더십에 의존한 비민주적인 방식이었다해도
국민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이를 지켜 보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조가 비대해지고 노조의 세력이 커짐에 따라 국민들은 노조의
의사결정이 민주적 관행에 따라 합리적 방식으로 이루어 질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이의 대표적인 예가 중위수에 위치한 사람들의 의사에 따라 정책을 결정
하는 중위수투표방식이다.

선진국의 경험에 의하면 리더십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민주적인 중위수투표
방식에 의한 노조의 의사결정이 조합원 전체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개선과
고용안정측면에서 더 성취도가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노동조합이 선명성 경쟁이나 조합원들의 단기적 이익의 극대화에만
급급하거나 또는 회사경영이나 국가경제실정을 도외시한 노동운동 전략을
추구할 경우 국민이나 언론으로부터 외면되리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사용자는 노조로 하여금 생산성향상에 따른 배분 몫이 형평하게 배분
되리라는 신뢰감을 주고 기업의 경영환경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등
경영정보의 비대칭성을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종업원들의 작업동기 유발과 직장에 대한 책임감과 귀속감을
증대시킬 수 있는 참여적 경영이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의 기업들은 아직까지도 경영정보를 분식없이 공개하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업원의 동기유발과 직장몰입도의 제고를 위해서는 이익배분과정과
의사결정 및 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교란을 흡수하고 이의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정부는 제도적 개선은 물론 노사관계의 원활화에 도움이 되는 외부환경의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

즉 경제 및 산업민주화의 진전과 단체교섭에 도움이 되는 제도적 기반과
외부환경의 조성에 정책적 우선순위가 두어져야 한다.

또한 정부는 이해당사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분야에 대한 고충(단체협약의
해석과 적용을 둘러싼 이견)등이 발생한 경우 이의 조정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노사관계의 외부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은 인력수급의 현황파악, 인력의
효율적 활용과 인적자원의 개발체계 수립, 산업안전, 임금격차 완화, 임금
지급체계의 개선, 임금-인력-여성-산업정책간의 최적조합등 매우 광범위하다.

또한 정부의 거시정책이 단체교섭의 외부환경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임을
고려할 때 정부는 물론 노사가 정부의 거시경제정책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노사정 못지 않게 중산층이 노사간
갈등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완충적 역할을 담당할 것이 요구된다.

즉 중산층 근로자들은 성과변동적 임금지급체계를 인정하는 작업동기를
지닌 생산자로서의 역할, 합리적인 소비자로서의 역할, 정치.사회적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역할등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협조적 노사관계 또는 협상자체를 어용시하는 풍토가 불식되지
않는 한 선진국형 노사관계의 정립은 법개정이나 제도의 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 인식되어야 한다.

새로운 노동법하에서 바람직한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추진하기 위해서
노사정은 물론 언론과 국민일반의 의식전환이 전제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