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장병력의 동해안 침투는 한마디로 충격이다.

북한의 실체를 망각할만큼 조급했던 일부의 통일환상은 모습을 드러낸
북의 잠수정, 총기 실탄 등 유류품, 수색작전 현장보도 앞에 산산조각
났어야 옳다.

알고보면 90년대 들어서도 간첩침투는 계속됐다.

사살 생포 등 적발건수가 15회나 된다.

다만 소규모여서 기억에 희미할 뿐이다.

그에 대해 이번 강릉 해안침투는 68년 124군부대 기습과 울진-삼척의
130여명 침투사건을 떠올릴 만큼 우선 10여명이란 인원수, 특수 잠수정
이용이란 점에서 놀랄 만하다.

94년 이후로는 소형 잠수정 이용이 특징이나 이번 것은 북한이 유고제를
모방 제작, 50척이나 보유중인 고성능 잠수정이란 점이 중요하다.

그런 준비의 저의가 의심스러우며 이는 전적으로 북한 내부사정에
달렸다고 본다.

상식적으론 나진-선봉에 외국투자 유치를 서두르며 항공로 개방에
대미접근을 가속화하는 북한이 무장병력 침투라는 모험을 감행할 이유가
있으랴는 의구가 생긴다.

그러나 바로 그점이 오늘날엔 오직 북한만이 갖는 특징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하루아침 찬탁으로의 급전, 조만식선생 송환제의 직후 6.25개전 등
반세기를 소급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화전양면술, 물과 불을 동시에 쓰는데
추종을 불허하는 명수임은 자주 겪어서 익히 안다.

다시 말해 저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일부나마 받아들이는 엄청난 모험을
하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반측면의 강경노선을 내세우는 것이 절대적인
요구다.

그같은 균형장치는 진보-보수의 내부대립 상태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보수에 대한 회유책에 그치지 않고 개방-서방
접근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언제라도 무력으로 체제를 고수한다는 저들
고유의 실체적 안전보장책이라는 사실을 놓쳐선 안된다.

사안을 조금 가까이 보자.

만일 잠수정이 좌초하지 않았다면 그들 작전대로 5, 6명 침투조만 상륙,
승무조는 귀환했다고 보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랬을 경우 첫째 침투병력이 노출되지 않고 임무수행에
성공했을까, 둘째 그들의 침투후 임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이다.

최초의 목격 신고자가 민간임을 상기한다면 좌초하지 않았을 경우 들키지
않고 은신했을 개연성은 높다.

다음 임무달성 가능성은 임무의 성질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령 파괴공작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더 높다고 봐야 한다.

가장 핵심사항은 그들의 임무로서, 북한 권부가 모험을 하면서 무장간첩을
밀파한 목적도 된다.

국방부의 1차분석도 나왔지만 북한 내부사정 이외에 남한에 대하여는
특히 그들 판단으로 한총련 사태이후 고양된 대북 동정분위기의 직접 확인과
이용, 가능성 타진, 해이 정도의 점검, 대미 압력 등이 주목적일 것이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듯이 북의 모험을 이쪽에 유리하도록
역이용 할 능력을 보유해야 한다.

이번에 그런 우리의 능력을 저들과 세계에 과시함음 물론 우리 자신에게
보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흐트러진 사회-정치-관의 기강, 군의 사기가 바로 잡히는 계기가 된다면
전화위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