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 < 과학정보통신 부장 >

신규통신사업자의 대거 등장으로 서비스식별번호 전쟁이 치열하다.

저마다 이용자가 외우기 쉽고 다이얼링하기 편한 번호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며칠전에는이문제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여기서도 사업자마다
이해득실에 따라 고성이 오갔다.

LG텔레콤 한솔PCS 등 PCS(개인휴대통신)사업자들은 한국이동통신
신세기통신 등 이동전화사업자들과 경쟁해야 할 처지인만큼 이들에 비해
불리한 번호는 절대 받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LG 한솔과는 달리 한국이통과 신세기는 현재 사용중인 번호를 그대로
쓰기를 원하고 있다.

한국이통은 현행 식별번호인 "011"을 4자리수로 바꿀경우 이용자혼란과
함께 1조5천억원의 비용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LG 한솔 등은 자금 인력 등 모든 면에서 불리한 여건속에 새로
가입자를 받아 서비스를 시작해야 하는 처지에 번호마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이들 양측의 주장은 둘다 일리가 있다.

기존사업자의 경우 애써 알려놓은 번호를 하루아침에 바꾸는게
쉽지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또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새로 서비스에 들어가야 하는 후발
사업자들은 기존사업자와 같은 번호를 받아도 힘들판에 차별을
환영할리 없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보면 외우기 쉽고 걸기 쉬운 번호가 사업의
흥망을 좌우한다.

이때문에 사업자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번호홍보에 열을 올릴 수
밖에 없다.

한국이통은 그동안 "011"홍보에 5천억원을 신세기는 "017"홍보에
1천억원을 투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데이콤은 "082" 3자리를 더 누르도록 하는 바람에 시외전화시장
진입에 애를 먹었다고 토로하고 있다.

식별번호가 사업자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결국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서비스식별번호 싸움은 번호배정권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부의 합리적인 정책판단에 따라 좋게 끝날 수도
있고 치고 받는 전쟁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현행 우리나라 전화번호체계는 주먹구구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합리적인 면보다는 대충 정한 느낌이 강하다.

시외전화 지역번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서울은 2자리숫자인 "02"만 누르게 되어있고 부산 대구 등 광역시는
3자리 숫자다.

반면 지방도시와 읍 면 등은 서울의 두배인 4자리숫자를 누르도록
되어 있다.

전화다이얼을 돌리는 데서도 서울사람과 지방사람을 차별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진 알 수 없지만 뭔가 형평에 맞지않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이동전화 식별번호도 비슷한 케이스다.

한국이통이 쓰는 "011"이나 신세기가 쓰는 "017"은 서비스 식별
번호인데도 마치 사업자번호처럼 알려져 있다.

일반인들은 심지어 이들 번호가 핸드폰번호인 것처럼 오인하기까지
한다.

통신사업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자연히 서비스식별번호도 많아지게 되고 사업종류에 따라 번호가
차별화 되어야 한다.

잘못된 현행 번호체계를 바로잡는 한편 합리성과 공정경쟁에 바탕을
둔 새로운 번호체계 정립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