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반이 유상련을 따라 나가니 유상련은 화장실 뒤편으로 돌아가
인적이 드문 외진 곳으로 갔다.

설반이 유상련에게로 다가가 어떤 기대에 찬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상련이, 왜 나를 불러낸 거야?"

유상련이 술자리에서 설반을 꺼리던 태도를 바꾸어 눈웃음까지 쳐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나에게 마음이 있습니까? 술기운으로 괜히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설반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마음이 있다마다.

내가 상련을 얼마나 연모해왔는데" 유상련이 짐짓 감격해 하는 표정으로
설반의 두 손을 잡았다.

"그럼 오늘 나를 안아주세요.

사람들 눈도 있고 하니 우리 집 별채로 가서 다시 술상을 벌여 밤새도록
마시며 즐기시지요.

우리 집 별채에는 내 시중을 드는 미동(미동)들이 있는데 아직 남자
손이 미치지 않은 애들이랍니다.

그 애들을 가지고 노는 맛도 일품일 겁니다" 설반은 싱글벙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지금 당장 거기로 갈까?"

"그러시면 사람들의 의심을 사기 십상이지요.

둘이서 화장실로 갔다가 사라져 봐요.

말들이 많을 거잖아요"

"그럼 어떻게 할까?"

"다시 술자리로 돌아가서 술을 더 마시는 척하다가 사람들이 취한 후에
내가 먼저 자리를 뜰 테니 좀 있다 설형도 나오세요.

내가 북문 밖에 있는 다리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런 식으로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할 거예요"

"그, 그러지"

설반은 정말 뛸 듯이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둘은 다시 뇌대의 연회장으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계속
마시었다.

이번에는 설반이 유상련을 집적거리지 않고 점잖게 술을 마시며 슬쩍슬쩍
유상련을 쳐다보았다.

유상련도 설반의 시선을 느낄 적마다 빙긋 미소를 지으며 반응을
보여주었다.

설반은 유상련의 미소를 보며 행복감에 젖어 온몸이 짜릿짜릿할
지경이었다.

오늘 밤에 저렇게 아름다운 남자를 안을 수 있다니.

유상련의 알몸을 안는 모습을 상상해보며 설반은 기분이 좋아 다른
사람이 권하는 술뿐 아니라 스스로 술잔에 술을 따라 마시기도 하였다.

"설형, 오늘 너무 즐거운 것 같군요"

누가 설반에게 그런 말을 건네면 설반은, 허허허허, 호탕하게 웃음까지
웃으며, "세상 만사가 다 아름답지 않소" 거드름을 피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