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아, 가사 대감이 너를 첩으로 삼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나도
들었다.

네가 그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나도 처음에는 그 늙은 대감이 주책을 부린다고 생각하여 네가 그
대감에게로 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집안 형편을 보고 오니 생각이 달라지는구나.

아버님이 살아계실 날도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돌아가시기 전에
네가 혼사를 치르는 것을 보고 가시는 것이 좋지 않겠니?

근데 지금 누가 선뜻 나서서 너를 데려가려고 하겠니?

이런 지경을 당하고 보니, 너를 어여쁘게 여겨 데려가려고 하는 가사
대감이 고맙기까지 하구나.

그리고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어머님을 우리가 모셔야 하는데, 네기
지체 높은 집안의 이랑이 되면 그동안 고생만 하신 어머님도 호강시켜
드릴 수 있지 않겠니.

오빠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우리 집안을 돕고
일으키기 위해서는 네가 팔려가는 기분이 들더라도 꾹 참고 가사 대감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김문상은 원앙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원앙은 아직도 눈물을 흘리며 묵묵히 김문상의 말만 듣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주막으로 들어가 거처를 정하였다.

원앙을 다른 방에 따로 재우다가는 어떤 놈이 덮칠지 알 수 없어
김문상은 원앙이 자기 아내인 것처럼 하여 같은 방에 함께 투숙하였다.

김문상이 아랫목에 요를 깔고 눕고 원앙은 윗목에 누웠는데, 원앙의
흐느끼는 소리와 한숨소리에 김문상은 잠을 잘 이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김문상은 일어나 앉아 원앙 쪽을 바라보았다.

원앙은 속옷 차림으로 돌아누워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었다.

원앙의 속마음을 헤아려 알고 있는 김문상이 어떻게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무릎 걸음으로 다가가 원앙을 부축하여 일으켜 앉혔다.

원앙이 울다가 지친 듯 힘없이 김문상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김문상은 다 큰 여동생을 안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셈이었다.

여동생이긴 하나 그 몸이 너무도 탐스러워 순간적으로 흥분이 되는
것을 어찌하지 못했다.

이 애를 가지는 놈은 행복한 사내일 거야.

김문상은 아무리 안아도 감칠맛이 나지 않는 자기 아내와 원앙이 비교가
되면서 앞으로 원앙을 가지게 될 사내가 은근히 부러워지는 것이었다.

"원앙아, 왜 그리 잠도 자지 않고 울고만 있니?

그렇게도 가사 대감의 첩이 되는 것이 싫으니?"

원앙은 대답할 힘도 없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집안 형편을 보아서는 오빠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칠 지경인 모양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