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1일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에서 2002년 월드컵대회가 한-일
공동개최로 결정되었다.

단독개최를 열망해온 우리들로서는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지만, 한-일산업
협력의 현장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 한국인은 한곳으로 힘을 집중시키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저력이 있다는 것을, 서울 올림픽 유치이래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온 국민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쾌거였다고 생각한다.

이제 공동개최로 결정이 내려졌으므로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명실공히 21세기를 여는 최초의 월드컵 개최가 한-일양국의 주도하에 개최
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협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공동개최를 계기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는 인식을 털어내고,
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하여 21세기엔 좋은 이웃으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될 것을 기원해 마지 않는다.

그동안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운동을 보는 양국민의 반응은 극히 대조적
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보면 국운을 걸고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하였는데 비해,
일본국민은 일부 관계자외에는 시종일관 담담하게 흥분없이 받아들였던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앞으로 2002년 월드컵 개최시까지 양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수히 많다.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상호협력의 바탕위에서 새로운 세계평화, 동북
아시아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평화의 제전이 될 수 있도록 양국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 조용히 이를 성원해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스포츠는 어디까지나 스포츠다.

그동안의 한-일 대항 각종 스포츠경기는 우리의 한풀이로 인식되고, 과열
되는 경향이 있다.

경제대국 일본과 벌인 이번 유치경쟁, 그것도 2년이나 늦게 뛰어든 유치
경쟁서 일본과 대등한 입장에서 공동개최를 따낸 것은 우리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과시한 쾌거이며, 우리국민의 자랑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칫 일본과 우리가 대등한 국력을 가진 나라라고 스스로
자만하거나, 일본을 대수롭지 않은 나라로 치부하는 마음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유치로 들떠있는 분위기에 자칫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 들지만, 이번
기회에 일본과 일본사회를 다시 한번 냉정히 살펴보는 것도 어느면에서
유익한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최근 일본의 한 단면을 소개한다.

얼마전(5월30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독자투고란을 보니 "서민을 울리는
목욕요금인상"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어서 과연 얼마나 올렸나 읽어
보았다.

대중탕(일본에서는 이를 전탕이라고 한다)의 목욕요금이 360엔에서 370엔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독자는 동경도 아오지마 지사에게 "지사가 되고나서 서민의 애환을
잊었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에 동경도당국은 공중목욕탕을 더 조성하겠다고 하는 한편, 공중목욕탕측
엔 코스트다운을 위한 지혜를 짜내 서민 휴식처로서의 공간으로 지켜나가는
노력을 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필자가 근무하는 옆사무실에는 일본에서 장기간 생활한 50대의 모경제단체
부장이 있다.

그는 일본에서 근무하며 생활하던 습관대로 지금도 일본S화장품회사의
머리기름을 사용해 오고 있다.

나도 가끔 일본출장시 부탁을 받아 사다 주곤 하는데 이 화장품가격이
17년전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동안 소비세제의 도입으로 1,800엔에서 1,854엔으로 오르긴 했지만
달라진 점은 회사측이 원가절감을 위해 종이케이스를 없앴다는 정도이다.

최근 국내의 물가가 심상치 않다.

일본과의 7.5대1이라는 환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물가와 거의 같은 수준
이라는 것이 일본 출장자의 이야기이고, 국내의 고물가로 일본으로부터의
관광객이 급감하고 있다는 여행업계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허남정 < 서울 한일산업 기술협력단사무국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