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진통끝에 지난 6일 새 집행부를 구성했다.

선거전이 어느때보다 치열했던데다 일부 조합원들의 대회장 난입으로
위원장선출이 한차례 연기됐던터라 이날 전국대의원대회가 큰 잡음없이
새 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새 위원장에 선출된 박인상 금속노련위원장의 당선일성을 들어보면 대체적
으로 "합리적 개혁주의자"라는 평판에 어울리게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어
노총의 새로운 위상정립과 관련해 많은 기대를 갖게 한다.

개혁성향이 짙은 박위원장의 당선은 전지도부가 노동계 분열에 속수무책
이었던 탓에 노총의 지도력에 위기의식을 느낀 노동계가 합리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지닌 새지도부를 갈망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우리가 박위원장의 당선을 축하하기에 앞서 무거운 책무를 강조하지 않을수
없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박위원장은 당선 첫 소감으로 노총도경쟁체제에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재야노동세력인 민노총의 출범으로 노동계에서 노총의 "독점시대"가
끝난만큼 내부개혁과 경쟁력 확보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가 경쟁체제적응을 위해 노총을 현장중심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한 것이나
노사문제의 사업장별 노사자율 해결원칙을 내세운 것은 올바른 방향설정으로
보인다.

큰 변화에 휩싸여 있는 노동현장을 외면한채 탁상공론식 낡은 전략전술이나
명분에만 매달리다 보면 사회변화에 낙오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민노총문제와 관련해서도 적대적 경쟁의식을 지양하겠다는 접근자세는
옳다고 본다.

사사건건 민노총을 의식해 노사분쟁에 정치적 접근을 시도한다면 이는
노사모두에 득이 될수 없다.

우리가 박위원장체제의 출범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가닥 우려를
떨쳐버리지 못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노총의 정치참여선언이다.

전국대의원들이 채택한 "노조정치활동강화 결의문"은 오는 4월총선에서
노동계출신및 친노동계인사의 국회진출을 위해 전조직력을 동원하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다.

이같은 선언은 "노동자당" 창당추진설과 때를 같이한 것이어서 선거때마다
그냥 해보는 소리로만은 들리지 않는다.

노총이 노조의 정치참여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노동법을 어기면서까지
정치판에 뛰어든다면 그렇지 않아도 혼탁한 우리의 선거분위기는 더욱
흐려질 것이다.

또 사분오열된 정치판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이를 환영할리 없다.

민노총조차도 정치참여에 신중한것은 바로 이같은 국민적 정서를 무시할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현명하다.

정치참여를 하더라도 법부터 개정하는것이 순서다.

노총의 새집행부는 실속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것이 아니라 현장중심의
자기개혁과 새로운 생산적 노사관계정립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것만이 노총이 이 경쟁시대에 비교우위를 확보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