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부부가 함께 벌어 생활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가계는 가장이 책임진다는 전통적 유교관은 깨진지 이미 오래다.

부부가 함께 수입원을 갖는 더블 인컴(Double Income)시대가 성큼
다가선 것이다.

지난 94년 현재 우리나라 63개 도시의 도시근로자 가구중 30.7%가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통계는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가 선진국형으로 변모하면서 소비수준이 크게 높아진데다
한국적 특수상황인 자녀교육비의 증가,사회정화로 인한 "콩고물성"
부수입의 근절 등이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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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8년 대학졸업후 N사에 입사, 직장생활 9년째를 맞은 박석태
과장(36)은 요즘 아내의 부업 선언을 듣고 고민에 빠져 있다.

3돌을 갓넘긴 아들을 인근 영재학원에 맡기고 자신은 보험 생활설계사로
나서겠다는 아내를 말릴 수도, 모른체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상계동에 25평 전세 아파트를 마련하면서 시작된 적자 가계를 생각하면
아내의 부업고민도 이해를 해야겠지만 세살박이 아들의 양육 문제를
떠올릴 때면 현실이 서글프기까지 하다.

박과장의 월급은 1백10만원이 채 못된다.

꽤 이름이 알려진 회사지만 대기업에 비해서는 월급이 짠 편이다.

은행에서 빌린 전세자금 1천5백만원에 대한 원금및 이자 30만원, 4년된
프라이드승용차 유지비 20만원, 경조사비 10만여원, 점심식사비 및 용돈
20여만원을 제하면 순수 생활비는 30만원미만이다.

박과장은 그래서 매달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를 받아 모자라는 생활비를
보충하고 보너스가 나오면 메꾸는 식의 가계를 꾸려 나간다.

중고로 구입한 차를 바꿀때가 됐지만 지금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다.

올 겨울에 입고 다니는 코트도 5년전 결혼때 혼수로 받은 것이다.

양복도 춘하복, 추동복으로 두벌씩 갖고 있지만 모두 3~4년전애 구입한
것이다.

명절때 고향을 찾는 것도 부담스런 일이 돼버렸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박과장은 결국 신정연휴기간중 생각끝에 아내의 부업을 묵인키로 했다.

대신아들의 양육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국내굴지의 대기업인 S사에 근무하는 이준섭대리(33)는 지난해부터
동료들에게 "월급만으로는 쪼들려 못살겠다.

장사를 하든지 맞벌이를 하든지 무슨수를 내야겠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난해 어렵사리 분양받은 아파트 중도금마련에 가계가 압박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분양계약금은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부어 온 적금으로 해결했지만
3개월마다 돌아오는 중도금때문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했고 이제는
은행빚에 대한 이자가 또다른 지출원으로 등장했다.

지난해부터는 네살박이 딸아이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교육비도
만만치않게 지출되고 있다.

올봄에는 둘째가 태어날 예정이어서 기쁜 마음보다는 부담이 앞선다.

이대리는 그래서 아파트 잔금을 치를때까지는 가족외식도 삼가고 새옷
장만도 않기로 했다.

심지어는 현재 타고 다니는 엘란트라 승용차를 처분할까도 생각했지만
그것만은 어려울 것같아 포기했다.

1백만원이 약간 넘는 월급으로는 한달 생활이 어려워 보너스를
기다리기는 박과장과 매한가지다.

이대리는 얼마전 "전공을 살려 유아원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나가기로
했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얼마나 번다고 그래.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고
소리쳤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준대"라고 묻고 싶었다.

"외벌이" 직장인들이 요즘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민거리다.

< 김상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