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서소문지점들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과 관련, "태풍의
중심권"에 자리잡고 있다.

검찰수사결과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차명예치됐던 4백85억원이
서소문지역에 밀집되어있는 다른 시중은행지점으로 부터 출금된 사실이
일부 드러나는등 이 지점들이 "돈 세탁" 장소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때문이다.

이같은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될 경우 다른 은행들도 비자금파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청에서 서쪽인 신촌방향으로 뻗은 약 1.5Km의 서소문로 양쪽은
삼성본관등 삼성그룹의 계열사 대부분이 몰렸는데다 한진그룹 효성그룹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많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

또 최근 대검찰청과 법원이 강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는 법원주변의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이 곳 은행지점들을 거래은행으로 이용해 예금계수가
다른 어느지역보다도 컸던 곳이다.

현재 서소문에는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국민 신한 하나 동화등
10개시중은행과 중소기업 주택 농협 3개 국책은행등 모두 13개 은행지점
들이 몰려있다.

이들 점포는 각각 자기은행에서는 "노른자 점포"로 꼽힌다.

본점 영업부를 제외할 경우 서울은행은 서소문지점이 랭킹 1위,
제일은행은 주거래인 대우그룹이 있는 남대문에 이어 2위를 차지할
정도다.

서소문지점들의 수신은 최근들어서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노대통령의 비자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의
경우 은행계정과 신탁계정을 합친 수신고가 이우근전지점장이 40대
남자로부터 3백억원을 받아 합의차명계좌로 예치할 때인 지난 93년
1월에 2천7백10억원이었으나 올해 9월말에는 4천8백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동안 <>제일은행서소문지점은 1천4백87억원에서 4천2백73억원
<>한일은행은 2천7백51억원에서 4천1백71억원 <>서울은행은 2천9백38억원
에서 4천8백40억원으로 각각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7월 점포를 내 서소문의 막내가 된 하나은행도 1년여만에
1천5백14억원(9월말현재)의 수신을 올렸을 정도다.

서소문지점장들은 그래서 이 지점 근무를 마치면 신한은행의
이전지점장처럼 이사로 승진하거나 본부부서장으로 영전됐다.

현재 서소문 지점장출신 임원으로는 서울은행의 김용요전무,
한일은행의 박재경상무 이철주상무, 외환은행의 최남규이사 등이
있으며 제일은행출신의 강덕열 제일씨티리스사장도 이곳 출신이다.

서소문 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지점장은 "서소문지점들이 돈세탁
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서소문지점이라도 삼성 한진 효성등 대기업그룹의 예금이
아닐 경우 한꺼번에 5억원정도만 들어와도 "지점 전체가 놀랄만한 사건"
이어서 검은 자금이 쉽게 들락날락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일반론이다.

그러나 신한은행처럼 행내에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5억원이
아니라 5백억원도 돈세탁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란 지적도 많다.

물론 이 경우엔 다른 은행들도 신한은행처럼 행장급의 지시 내지
동의가 없고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노대통령의 비자금이 신한은행으로 가기전에 다른 은행을 통했을
경우 나응찬신한은행장외에서 상당수의 은행장들이 최소한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육동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