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야스히코 < 일본 사이타마대 교수 >

1994년 8월 16일 아침 나는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체과학원
전용의 메르세데스 벤츠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해방기념일의 화사한 공기로
가득찬 평양거리를 지나 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학술교류를 명목으로 한 11일간의 북한 공식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주체과학원 섭외부국장인 김려화여사가 합승, 김일성주석사후의 한반도
정세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평양외국어대학을 졸업한 그는 해외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데도 영국식발음
의 영어를 막힘없이 구사, 유엔에서 오래 근무했던 나보다도 한두수 위였다.

나는 진작부터 조선민족은 일본인보다 외국어에 훨씬 많은 재능을 타고
났다고 느껴왔다.

아마도 한글에는 모음이 많고 일본어와 비교할때 자음의 발음도 복잡해
한국인들의 외국어 청취력이 발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글문자는 단순명료하여 한글표기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언어표기라고
나는 확신한다.

조선민족이 영국인처럼 세계를 지배하는 식민지제국이었다면 전세계
민족들이 한글을 읽고 쓰고 말하게 됐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말을 되돌리자.

자동차는 평양교외로 접어들었다.

벤츠는 시속 1백40km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로포장 상태가 나빠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오가는 자동차를 거의 볼 수 없다.

때때로 군인들을 가득 태운 트럭이 평양쪽을 향해 달리는 모습뿐.

김여사의 목소리는 울음소리로 변해있었다.

옆얼굴을 살펴보니 눈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주석이 3주동안만 더 살아계셨다면 김영삼대통령이 예정대로 평양을 방문,
남북수뇌회담이 실현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은 남북대화가 본 궤도에
올라 고려연방제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절차도 논의됐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것을 생각하면 분해 운명의 신을 저주하지 않을수 없다. 어쨌든
우리는 한민족인데..."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떡일수 밖에 없었다.

나는 평양체류기간중 노동당 국제담당 황장엽서기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두차례에 걸쳐 회담을 갖고 한반도정세뿐만 아니라 국제정세전반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황서기는 주체사상의 이론적 지주로서 유명한 철학자로 주체과학원장이
되기 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교수와 학장을 역임했으며 김정일서기 개인의
은사이면서 후견인이기도 하다.

당시 73세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젊어보였으며 러시아어로 이야기하는
쪽이 더 편하다는 그의 일본어도 매우 정확했다.

"냉전구조 붕괴는 미국의 파워정책 파괴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냉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일본에 책임이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6.25전쟁으로 상호 피를 흘렸던 항쟁을 벌이지
않고 끝났을 것이고 오늘날 남북분단의 비극을 맛보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그 책임을 일본정부와 국민은 자각해야만 한다"

이것이 황서기의 주장이었다.

이는 한국국민에게도 공통되는 기본인식일 것이다.

다만 황서기의 말투는 "북한이 남한을 해방한다"는 종래의 북한의 자신
만만한 자세가 수그러든 것처럼 느껴졌고 오늘날 북한이 직면한 곤혹스런
고통과 한가닥의 외로움이 비쳐졌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으면서도 강한 자부심과 허풍만 내세우는 듯한
인상이었다.

북한은 체제상의 결함에서부터 나오는 농업침체, 악천후에 따른 쌀과
곡물의 계속되는 흉작, 설상가상으로 발생한 대홍수등이 겹쳐 경제적 곤란을
탈피하지 못하고 국민들은 "미국과 일본사람들처럼 고기국을 마시고 명주로
만든 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산다"는 것은 "꿈중에서도 꿈"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주변국가들에 쌀구걸 외교를 전개, 홍수피해를 침소봉대해
퍼뜨리고 유엔에 원조를 요청할수 밖에 없게 돼가는 북한은 겨우 체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김정일서기의 지위계승 지연의 주요인은 부친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어
권력기반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며 김일성-김정일체제가 조만간 붕괴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 북한전문가는 한국이나 일본에 적지 않으나 나는 체제붕괴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조선사회, 특히 북한사회는 유교의 전통이 강해 가부장제
연공서열제가 사회구석구석까지 뿌리내려 있다.

게다가 주체사상에 기초하는 "우리식"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져
북한국민들은 어릴적부터 단결과 상호부조 정신을 철저하게 주입받고 있다.

아울러 김일성 신격화는 이같은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김정일서기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인민군 최고사령관및
당국방위원회위원장으로서 군대를 장악, 그의 주위에는 혁명 제2세대의
테크노크라트(관료)집단이 결집되어 있다.

더구나 4백만 당원조직이 전국 곳곳에 퍼져 상호감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주체과학원 간부는 북한사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인민은 세포, 당은 혈액,
국가영수는 두뇌"라고 설명했는데 그에 따르면 혈액은 전신을 흐르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체제 살리기에 공헌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대북한 대화노선
이다.

즉 지난해 10월 21일 체결된 미.북한간 "틀만들기" 합의조인은 양국이
지난 10년간에 걸친 대화와 교섭의 당사자들로서 현체제를 계승, 인지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말할수 있다.

북한은 이후에도 강경한 자세를 꺾지 않고 결렬직전까지 자기의견만을 고집
하는 외교정책을 고수해 왔으나 미.북한이 합의한 "틀만들기"의 근본이
무너져 내려 핵개발이 재개되는 사태에는 이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북한은 핵개발이 재개되면 자국이 잃는 것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핵개발계획 동결의 대가로 합의한 "한국형" 경수로2기 공여를 주요 과제로
삼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는 기금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최근
한국 일본외에 영국 네덜란드 핀란드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등이 참가의향을 표명하고 있어 앞으로 지지기반을
한층 넓힐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KEDO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는 않지만 "틀만들기" 합의에 기초해
연간 50만t의 중유를 무상제공키로 약속했으며 이미 15만t의 출하를 마친
상태이다.

연변지구의 핵관련시설에는 벌써 미국 원자력산업이 진출했으며 5천kW의
흑연감속형 발전로의 연료봉 보존냉각작업에는 미국 사기업 기술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도 북한이 핵개발동결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본부에 보고하고 있다.

핵개발의혹을 최대의 무기로 교섭상대의 목을 조르던 미국을 대결상황에서
부터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북한지도부는 다음 목표로 일본을
선택, 일.북한 국교정상화 교섭재개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말 예비적 접촉이 북경에서 행해져 쌀의 추가지원이 합의됐는데
올 연말까지는 실로 3년만에 본격 교섭재개가 실현될 전망이다.

교섭상대를 차례차례로, 즉 대미의 다음은 대일, 그다음은 남북으로 구분
해 놓은 것이 평양지도부의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대미교섭에 이어 일본과의 교섭을 마무리, 한국을 견제하고 고립시켜
앞으로 남북대화때 조금이라도 유리한 입장에 서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이러한 대남전략을 파악했을 것이며 국제
사회에서의 유리한 지위와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를 배경으로 북한당국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이 결과 남북관계의 경직화는 당분간 피할수 없을 것이다.

북한정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여름 도쿄를 방문한 노동당간부는 "남북통일은 오는 2010년께까지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역할은 구종주국, 구침략자로서 남북통일의 조기실현을 조금이라도
측면에서 지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일.북한 국교정상화교섭도 남북간 화해와 통일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추진
돼야할 것이다.

당분간 남북의 틈을 메워주는 효과가 될만한 것에는 KEDO에 출자하는 것
외에 북한이 열의를 나타내고 있는 두반강 개발계획에 협력하는 것을 들수
있다.

김일성-김정일체제를 지탱해가는 가운데 북한의 경제활성화를 도와 개혁
개방에 따른 국민생활수준향상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이 이상의 방법은
없다.

즉 소프트랜딩 지원을 말한다.

일체 지원하지않고 체제붕괴를 재촉하는 방법이 북한국민을 위하는 길
이라는 의견은 한국뿐만아니라 일본내에도 있지만 이것은 상당한 혼란과,
상황에 따라서는 유혈사태를 초래할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반대한다.

일본의 재계는 요즘 대북한 진출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정부
의 자세가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장래에 하시모토 류타로신총재.가토모이치신간사장을 축으로한
자민당의 단독정권, 혹은 자민당주체의 연립정권이 출현하면 대북한정책도
구체적으로 수립돼 민간자금이 본격적으로 두만강개발에 유입될수 있을
것이다.

두만강개발계획은 유엔개발개획(UNDP)내 지역개발계획의 하나로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