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원 <현대경제사회연 선임 연구위원>

연초 경상수지 적자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허물어지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올 1.4분기에 이미 37억5,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다.

초엔고로 인한 반사이익과 세계경기활황과 같은 수출여건의 호전에 따른
무역수지개선효과 때문에 올해 경상수지에 대한 낙관론이 팽배했었다.

하지만 4월까지 통관기준으로 본 무역수지는 52억1,0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여 지난해 전체 적자규모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쟁국들은 엔고의 영향으로 무역수지가 크게 개선되고
있다.

대만의 경우 1.4분기의 무역수지 흑자는 전년 동기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15억달러를 기록하였다.

홍콩의 경우 2월까지 1,530억홍콩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더욱이 대만의 일본에 대한 수출은 38%이상이나 증가한 반면 수입은
20%증가에 그쳐 엔고로 인한 대일 무역역조개선 효과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수출주력품목간 경합으로 엔고의 최대수혜국이 될것처럼
여겨지던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더 악화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전자 선박등의 대일 부품수입 의존도가 3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수출의 호조가 바로 대일 수입의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최근 엔고로 일본에서 들여오는 자본재의 가격도 높아져 대일
수입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대일 수출도 크게 늘어났지만 수입의 급등으로 인해 1.4분기동안 대일
무역수지적자는 전년동기에 비해 10억달러이상 증가한 35억7,000만달러를
기록하여 같은기간 우리나라 경상적자규모와 비슷하다.

이같은 결과는 첫째 엔고로 인한 무역수지개선효과가 단기간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대일 수출품은 대체로 소비재여서 경쟁국이 많고 수입장벽도 높아
수출증대효과가 시간을 두고 나타나는 반면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되는
자본재는 국내에서 필요재인 까닭에 수입비용은 곧바로 늘어나 당장에는
무역수지적자효과가 더 심화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달러화약세에 따른 원화의 절상은 수출의 감소와
수입의 증가를 초래하게 된다.

즉 엔고로 인한 무역수지개선효과를 맛보기도전에 원화절상으로 인해
그 효과가 상당히 상쇄되어 오히려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둘째 이처럼 환율의 무역수지조정 기능약화가 초래되는 배경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자본재산업 부문에 있어서 투자와 기술력의 격차가
가로놓여 있다.

또한 일본제품에 대한 막연한 의지심리도 가세하고 있다.

일본은 자본재 산업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우리보다 한단계
높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자본재 산업과 같은 기간산업을 육성하기보다는 이를
손쉽게 해외에,특히 일본에 의존하여 왔다.

기간산업은 매몰비용( Sunk Cost )을 기본전제로 한다.

이 비용을 큰 마음먹고 지불하려들지 않는한 우리는 앞으로도 원화의
대엔화평가 절하로 인해 값이 비싸진 일본산 수입자본재를 울며
겨자먹기로 들여올수 밖에 없다.

무역외수지는 더 큰 경상수지적자의 범인이다.

금년 첫분기 무역적자는 전년보다 1.6배 늘었지만 무역외적자는
1.8배나 늘어났다.

대외개방의 확대에 따라 해외운수 관련경비와 같은 무역외수지의 적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는 막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국내 서비스산업의 효율성이 낮은데다가 고물류 비용을 치르게하는
전근대적인 유통구조나 턱없이 부족한 사회간접자본때문에 수출물동량의
증가는 무역외수지 적자확대라는 일종의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경상수지적자의 심화를 막는 대책은 무엇인가.

첫째 대일의존도가 높은 기계류및 부품의 국산화없인 더이상 논의가
무의미하다.

우리 제조업이 비록 중화학공업 위주로 재편되고 있지만 기계류및
부품.소재등의 자본재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2%로
선진국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무엇보다도 자본재 산업의 경쟁력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올해 수출 1,000억달러 달성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본 자본재의 수출비중은
4.3%로 같은 시점이었던 96년 서독의 21.8%,79년 일본의 14.4%의 5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둘째 무역고에서 세계 10위권에 도달하고 완전 고용이 지속되는 상황
에서는 채산성이 유지되지 않는 품목의 수출확대는 더이상 국민경제의
장기적 발전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출한계기업에 대한 냉철한 대처가 요망된다.

셋째 경제의 소프트화가 하루빨리 추진되어야 한다.

무역관련 서비스산업의 육성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수출입 활동에서 애써
벌어들인 외화를 쉽게 낭비할수 있다.

넷째 일본시장의 개방확대를 유도하기위해 WTO규범을 원용하여 대일
수출장벽의 해소에 힘써야한다.

나아가 일본의 부품업체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한일간 무역수지를
균형화하는 기틀로 삼아야한다.

이상의 대책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의 무역수지 조절기능을 제고시켜야 한다.

경쟁국 통화보다 원화가 더 빨리 절상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