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최대의 유리제품 메이커인 한국유리의 이세훈사장은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 있는 인천공장에 현장점검을 자주나간다.

이사장은 인천공장에 도착한후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을 먼저 들른다.

여기서 김영천 노조위원장과 머리를 맞대고 현안사항을 협의한다.

경영자와 노조위원장이 터놓고 대화를 하니까 풀리지 않는 문제가
없다.

한국유리가 군산과 부산,구미에 유리공장을 설립하면서 근로자
이직문제등 많은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한번도 잡음이 생기지
않은 것은 이같은 노사간의 "터놓고 대화하기" 때문이다.

한국유리의 노동조합은 탄생과정에서부터 색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성실과 봉사정신을 좌우명으로 하는 창업주인 최태섭 명예회장은
지난 61년 근로자도 대표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과 연중내내
용해로를 가동해야 하는 장치산업의 특성상 노사관계의 안정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노조설립을 근로자에게 권유했다.

이같은 출생과정을 거친 한국유리 노동조합은 지금까지 대결보다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훌륭한 전통을 이룩해 왔다.

노조역사 34년동안 지난해 단한번 쟁의발생 신고를 제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무쟁의 기록을 유지해 오고 있다.

노동쟁의가 극성을 부리던 80년대 후반 그 흔한 쟁의한번 없었다.

이세훈사장은 "치열한 경쟁속에서 오늘의 한국유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오랜 경영경험과 성숙한 노사협력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남다른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한다.

김영천 노조위원장도 "한국유리의 노사관계는 경영층의 적극적인
노력이 쌓여 이해와 협조라는 오랜 전통을 고수해 왔다"며 앞으로도
협력사례의 모범이 될것"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유리의 근로자복지 제도는 실질적인 후생확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인천공장에 있는 기혼근로자 2천5백명중 내집이 없는 근로자가
1백명에 불과할 정도로 실질적인 복지혜택을 누리고 있다.

한국유리는 경영실적에 따라 특별상여급을 지급하는 성과배분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생산량 11% 증가에 따라 1인당 3백28만원의 성과급이
지급했다.

올해에는 6개월분 성과급 97만4천원이 지급된다.

이같은 성과배분제도는 노사안정과 종업원들의 근로의욕을 북돋우는
이중효과를 거두고 있다.

회사와 동고동락해온 장기근속자에 대한 대우도 남다르다.

20년 장기근속자의 경우 법정 퇴직금 누진일수가 6백일임에도 불구하고
1천2백80일로 인정,그동안의 공로를 감안해 주고 있다.

종업원의 퇴직금을 기업회계에서도 별도계정으로 설정, 고스란히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가공계정만 있는 타회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한국유리는 또 지난 57년 창업이후 근로자월급을 단한번도 체불하지
않았다.

지난 70년대말 경쟁업체의 등장으로 심하게 재정압박을 받을때도 최태섭
당시 사장의 "근로자는 반드시 월급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강한 소신에
따라 꼬박고박 월급을 지급해 왔다.

한국유리 경영자들은 인간존중의 원칙과 대등한 파트너로서의 노조인정을
경영지침으로 삼아 사람에 대한 투자를 중요시 하고 있다.

이세훈사장은 "우리회사의 기본적인 생존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적자원이다.

심한 경쟁속에서도 업계의 선두주자로 커올수 있었던 것도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인적자원이 생산적이고 창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소개한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유리의 생산성이 매년 10%이상 늘어나고 있는데서도
쉽게 반증된다.

한국유리 노조와 6개 계열사 노동조합은 각각 개별노조를 결성하고
있으며 공동으로 노동조합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 협의회 활동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는 한편 회사의 경영방향에
관한 지혜를 모아 협조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노조는 또 수시로 노사협의회를 개최해 현장근로자들이 제안한 불량
개선안,생산성 향상방안,민원사항등을 모아 회사측과 협의,즉각 경영에
반영한다.

한국유리노조는 앞으로 실리위주의 경제조합주의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김영천 노조위원장은 "노조위원장은 조합원 1천7백명 뿐만 아니라
사원가족을 합친 6천8백명의 대표라는 자부심속에 건전한 노사관계
정착에 노력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공장이 밀집한 인천시 만석동 일대는 아무래도 환경이 열악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유리 근로자들은 신사로 불린다.

근로자들은 작업을 마친후 3백명을 일시에 수용할수 있는 호텔급의
사내 사우나시설에서 하루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귀가하기 때문이다.

<인천=김희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