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보살과 아라한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920년께 북간도 어느 외딴 고을에 난데 없이 누더기만 걸친 수월선사
(1855~1927)가 나타났다.
그는 그곳 고갯마루 샘터곁에 오막살이 토굴 하나를 짓고 틈만 있으면 짚신
을 삼고 매일 밥을 지어 그 곳을 지나는 길손들에게 점심대접을 하고 새
짚신까지 신겨 보냈다.
누구에게 왜 준다거나 무엇을 준다는 생각도 그에게는 없었다.
''무주상포시''라는 최고의 보시를 이렇게 만주땅에서 행하다가 그는 그
곳에서 입적했다.
수월선사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혜월선사(1862~1937)의 보살행도 유명
하다.
그는 시장 한가운데서 고구마를 먹으며 다니고 남의 장독을 열어 손가락
으로 된장맛을 보고는 맛이 없으면 절의 된장을 퍼다주는 등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천진난만한 ''무심도인''이었다.
그가 천성산 내원사에 있을때 세마지가 남짓한 논을 마을 인부들을 시켜
개간했다.
그러나 일꾼들이 꾀를 부려 그에게 법문만 해달라는 통에 비용이 배가 더
나갔다.
주지가 세마지기 논이 다섯마지기 논을 개간하는 것 만큼 돈이 든 것을
불평하자 혜월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바보같은 사람들아, 다섯마지가 값의 돈은 세상에 나갔으니 그대로
세상에서 이리저리 돌아갈 것이고 우리는 없던 세마지기의 논을 새로
얻었으니 무엇이 밑졌단 말이냐. 그 뿐이냐. 부처님의 법이 중생들에게 널리
퍼졌으니 우리가 얻은 이익은 그야말로 무한량 아니냐"
불제자의 이상형을 소승에서는 ''아라한'', 대승에서는 ''보살''이라고 부른다.
모두 붓다가 되려는 사람이며 장차 붓다가 될 사람이다.
그러나 아라한은 자신만을 위해 열반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대승의 입장
이다.
반대로 보살은 자신만의 사사로운 열반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세상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살은 세상의 궁극적 구원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다.
남을 도우며 정진하는 삶 자체가 중생을 위한 법문이 됐던 수월이나 혜월
선사는 보살임이 분명한데, 요즘은 보살이 되려는 불자는 별로 없고 아라한
이 되려는 사람만 붐비는 것 같아 보인다.
"여래는 뉘신가 오셨는가 가셨는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생전에 불자들에게 던져놓은 경봉선사의 화두가
더 뜻깊게 들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7일자).
(1855~1927)가 나타났다.
그는 그곳 고갯마루 샘터곁에 오막살이 토굴 하나를 짓고 틈만 있으면 짚신
을 삼고 매일 밥을 지어 그 곳을 지나는 길손들에게 점심대접을 하고 새
짚신까지 신겨 보냈다.
누구에게 왜 준다거나 무엇을 준다는 생각도 그에게는 없었다.
''무주상포시''라는 최고의 보시를 이렇게 만주땅에서 행하다가 그는 그
곳에서 입적했다.
수월선사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혜월선사(1862~1937)의 보살행도 유명
하다.
그는 시장 한가운데서 고구마를 먹으며 다니고 남의 장독을 열어 손가락
으로 된장맛을 보고는 맛이 없으면 절의 된장을 퍼다주는 등 기행으로 널리
알려진 천진난만한 ''무심도인''이었다.
그가 천성산 내원사에 있을때 세마지가 남짓한 논을 마을 인부들을 시켜
개간했다.
그러나 일꾼들이 꾀를 부려 그에게 법문만 해달라는 통에 비용이 배가 더
나갔다.
주지가 세마지기 논이 다섯마지기 논을 개간하는 것 만큼 돈이 든 것을
불평하자 혜월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바보같은 사람들아, 다섯마지가 값의 돈은 세상에 나갔으니 그대로
세상에서 이리저리 돌아갈 것이고 우리는 없던 세마지기의 논을 새로
얻었으니 무엇이 밑졌단 말이냐. 그 뿐이냐. 부처님의 법이 중생들에게 널리
퍼졌으니 우리가 얻은 이익은 그야말로 무한량 아니냐"
불제자의 이상형을 소승에서는 ''아라한'', 대승에서는 ''보살''이라고 부른다.
모두 붓다가 되려는 사람이며 장차 붓다가 될 사람이다.
그러나 아라한은 자신만을 위해 열반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 대승의 입장
이다.
반대로 보살은 자신만의 사사로운 열반을 얻고자 하지 않는다.
세상사람에 대한 연민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보살은 세상의 궁극적 구원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다.
남을 도우며 정진하는 삶 자체가 중생을 위한 법문이 됐던 수월이나 혜월
선사는 보살임이 분명한데, 요즘은 보살이 되려는 불자는 별로 없고 아라한
이 되려는 사람만 붐비는 것 같아 보인다.
"여래는 뉘신가 오셨는가 가셨는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생전에 불자들에게 던져놓은 경봉선사의 화두가
더 뜻깊게 들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7일자).